올해로 창업 28년째를 맞는 ‘정스프라이스 센터’의 육정박 사장은 “앞으로 정스를 타인종도 찾는 최고의 한국산 전문점을 키우겠다”고 말했다. <신효섭 기자>
부침이 심한 한인타운 상권에서 강산이 세 번 가까이 변하도록 비즈니스를 영위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지난 78년 창업, 타운의 대표적 가정용품 업소로 우뚝 선 ‘정스 프라이스센터’의 장수 비결은 주목할 만하다. “그저 좋은 한국산 물건 염가에 팔고 있다”는 육정박(62) 사장을 만나 마케팅 전략과 비즈니스 노하우 등에 대해 들어봤다.
‘좋은 물건 염가에’신조로 창업 30년
폭동 견디며 자체빌딩 매입 탄탄한 발전
연 2∼3차례 한국출장 방방곡곡 누벼
타인종도 찾는 최고의 생활용품점 ‘야심’
▲비즈니스맨으로의 변신
육 사장이 미국 땅에 발을 내디딘 때는 지난 71년. 사업가로만 각인된 현재의 모습을 떠올리면 언뜻 연상이 안 되지만 그는 X-레이 테크니션으로 취업 이민을 왔다.
첫 근무처는 토랜스 하버 제너럴 하스피틀. 나름대로 적성도 맞고 다른 병원의 파트타임까지 뛴 억척스러움 덕에 돈도 제법 벌었다.
하지만 월급쟁이만으로 성에 차지 않았다. 그는 계약기간이 끝난 후 병원 일을 그만두고 토랜스에 ‘정스 전기’라는 조그만 가전업소를 차리고 비즈니스맨으로 나섰다. 아이템은 평소 관심이 많던 가전을 택했다. 시작은 ‘미약’했다. 말이 좋아 가전업소지 코딱지 만한 가게에서 베큠과 재봉틀 등을 취급하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장사는 짭짤했다. “77년인가, 한국일보가 두 면짜리 ‘미국소식’으로 발행되던 땐데 뒷면에 ‘청소기 팝니다’라는 조그만 광고를 냈어요. 생각보다 전화가 많이 왔는데 대부분 LA 한인타운에 거주하던 한인이었어요.”
이참에 그는 8가의 옛 동서 플라자 2층에 가게를 얻고 타운에 진출했다. 한국에서의 이민 행렬이 줄을 잇고 당시 한인업소로는 드물게 소니 딜러십도 보유한 덕에 비즈니스는 일취월장했다.
“특히 주한미군 중에 미국에 와서 물건을 받아다 파는 보따리 장사들이 엄청 많았어요. 한 사람이 소니 TV를 10대, 20대씩 캐시로 사갔으니…. 돈 셀 시간이 없어 자루에 쑤셔 넣었어요.”
500스퀘어피트 ‘단칸방’에서 시작한 가게는 번창, 80년대 초 8가와 하버드 코너 현재의 로젠 노래방 몰로 확장 이전했다. 한인들의 유난스런 일제 선호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 소니 등 일본산 TV와 카메라, 소형 가전 등을 전문으로 팔았다. 비즈니스는 해마다 두 자리수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호경기를 구가했다.
▲폭동, 불경기…위기의 시대
하지만 80년대말-90년대초까지 타운의 렌트도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당시 ‘가게세’로만 월 3만여 달러를 지불하던 육 사장은 자체 건물을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구석구석을 살피던 그의 눈에 쏙 들어온 것은 현 매장인 7가와 웨스트모어랜드 코너의 옛 IBM 웨어하우스였다. 에스크로를 열고 92년 5월 마침내 매입을 완료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해야 하나. 바로 한 달전 사상초유의 LA 폭동이 발생했다. 여기다 경기침체까지 겹쳤다.
리모델링을 끝내고 11월 업소를 오픈했지만 역시 성적표는 기대 이하. 또 당시만 해도 타운의 ‘마지노선’으로 여기던 버몬트를 벗어난 위치라 한인들의 트래픽은 예전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가게를 옮기고 2년간은 고전했어요. 그나마 내 건물이라 렌트 안내니 버틸 수 있었죠. 또 새 건물은 창고가 딸려있어 인건비와 렌트 등 총 비용이 3분의1로 줄어 힘든 시기를 견딜 수 있었어요.” 그래서 일까. 그는 지금까지 비즈니스를 하면서 가장 잘한 일이라면 서슴없이 건물 매입을 꼽는다. “예전에 아버님이 그러셨어요. 사업을 하면 사람들이 어려울 때 건물을 사놓으라고요. 그래야 호경기 때 살아남을 수 있다고. 그 말이 진짜 실감났습니다.”
▲한국산 용품 전문점으로 도약
7가로 이전하면서 취급 아이템도 대대적으로 손질했다. 소형 아이템만 남기고 가전은 아예 없앴다. 대신 한국산 생활용품을 특화, 한국산 전문점으로 표방하고 나섰다.
‘연탄집게만 빼고 다 있다’는 육대표의 말은 과언이 아니다. 현재 정스의 한국산 제품은 무려 6,000여가지. 동남아와 중국산도 일부 있지만 전체 품목 중 80% 이상은 ‘Made in Korea’다.
그런 만큼 육 대표의 발품 팔이는 장난이 아니다. 1년에 2~3회나 한국에 나간다. 한 번 출장에 2-3주씩 전국 방방곡곡을 누빈다. 한국에 가서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은 식당. 한식, 중식, 일식당 등을 두루 돌며 어떤 부엌용품을 사용하는지 유심히 살핀다. 예전에 못 보던 것인데 한집 건너 하나씩 사용된다면 미국에 갖고 들어가도 팔릴 증거라는 게 그의 노하우다.
대형 마트, 백화점, 재래시장도 빼놓지 않는다. “이거다” 싶으면 제조업체에 연락해 납품 가능성을 타진한다. 친지의 집도 드나들며 부엌 구석구석을 뒤진다고 한다. 한국에 있고 미국에는 없는, 한국 사람들이 쓰는 물건이라면 꼭 픽업한다.
“예전에 10년 가량의 시차가 있던 한국제품 도입 속도가 이젠 1~2년 내로 좁혀졌다”는 육 사장은 “한국산 제품은 퀄리티가 우수한 것은 물론 신토불이라 한인들의 생활패턴에도 가장 잘 맞는다”고 말한다.
그는 특히 “우리가 한국산 제품을 많이 애용하면 모국 경제에 일조할 수 있다”고도 강조했다. “지난 97년 IMF 때 이천에 한 도자기 공장을 갔는데 폐업 일보직전이었어요. 미국에서도 먹힐 것 같아 창고에 남아있던 물건을 싹 사들였죠. 이후 그 업체는 회생하고 수출 유망업체로 정부의 표창까지 받았어요.”
그는 앞으로 정스 프라이스센터를 명실공이 타인종도 즐겨 찾는 최고의 한국산 전문점으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이의 일환으로 현재 정스 자리에 대형마켓과 콘도나 아파트가 들어서는 대규모 주상복합을 건설하는 프로젝트도 구상중이다.
(213) 389-1111
<이해광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