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의 설원 위에서 김명준(왼쪽)씨가 끈에 의지해 산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사고사 이후 공포·설사·악천후 …
온갖 난관 떨치고 세계 최고봉 정복
아우성이다. 설원 위에 차려진 텐트 숲 사이로 사람들이 황망한 표정으로 구조작업에 여념이 없다. 베테랑 셀파인 아파조차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무작정 캠프 1로 뛰어 올라가고 있었다. 아이스 폴이 무너지며 우리 팀 셀파 2명을 포함한 3명이 숨지고 우리 팀 셀파 2명이 부상을 당했다. 아비규환 속에서도 구조 작업은 진행되고 있다. 의사 래리는 부상자 치료에 정신이 없고 육사 출신인 더그는 군사작전을 지휘하듯 부상자 후송용 헬기장을 만들고 있다. 나 역시 처음 맞는 사고에 정신을 반쯤 놓은 채 구조작업을 도왔다.
사고가 난 지 이틀이 흘렀다. 그동안 베이스 캠프의 분위기는 누구도 등반의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등 침묵만이 가득하다. 모두들 지친 기색이 역력한 채 각자 텐트에서 숨을 죽이고 있다.
24일 에베레스트의 등반이 재개됐다. 하지만 기쁨보단 불안함이 앞선다. 불상사를 의식해서인지 캠프 1로 오르는 구간은 힘이 두 배로 더 든다. 거대한 얼음 덩어리 밑에 아직도 깔려 있을 두 셀파의 사체를 생각하면 숨이 두근 반, 세근 반. 그들의 명복을 빌며 숨을 가다듬어 본다.
캠프 1과 2를 수차례 반복하며 28일 베이스캠프로 돌아왔다. 천국이다. 영하 25도의 추위가 사라진 이곳에서 뜨거운 물에 몸을 적신다. 냉면과 돼지고기로 허기진 배를 간신히 채우자 밀려오는 포만감에 눈이 스르르 내리 감긴다. 이런 감정도 잠시뿐 곧이어 설사가 나온다. 몇 시간 동안 텐트 안에서 끙끙대며 천국과 지옥을 오고갔다.
6일 7,200미터가 넘는 고지대인 캠프 3에 도착했다. 그저께 탈진 상태로 캠프 2에 도착한 여파가 덧칠되며 몸 상태는 최악이다. 셀파가 끓여준 저녁도 먹지 못한 채 다음 날 아침까지 누워만 있었다. ‘정상은 과연 오를 수 있을까’초조한 상념만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8일 정상의 날씨가 좋아지고 있다. 모든 준비는 끝나고 오르기만 하면 된다. 자신감이 샘솟는다. 하지만 오후가 되자 어김없이 눈발이 흩날린다. 9일에도 개점휴업이다. 쉬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피곤이 요동을 친다. 긴장이 풀려서 일까. 하염없는 노곤함이 몸과 마음을 짓누른다.
12일 베이스캠프에 활력이 감돈다. 티벳 쪽의 또 다른 등정팀인 한국인 박영석 대장이 베이스캠프에 들어왔다. 사투를 넘는 박 대장의 무용담을 들으니 ‘과연 박영석이구나’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에베레스트 초보 도전자인 나로서는 부러움과 경외감마저 치솟는다.
14일 혼자라도 에베레스트 공격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더 이상 미루면 안 될 것 같은 조급함 때문일까. 아무도 떠나지 않는 베이스캠프를 혼자 떠나려니 기분이 묘하다.
15일 아침, 홀로 밥숟갈을 뜨는데 ‘마지막 아침인가’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울컥 터진 후 그칠 줄 모른다. ‘눈물샘이 터졌나?’정신을 차려봐도 눈물은 흐른다. 홀로 뗀 발걸음은 고독하기 그지없다. 콧잔등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산소마스크 덕분에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코가 욱신거린다. ‘쌩∼’소리를 내며 마주치는 바람의 기세를 간신히 억누른 채 18일 캠프 4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게 어찌된 일인가. 아파는 기상이 나쁘니 다음 기회를 잡자고 말한다. 고단함과 절망감, 간신히 스스로를 위로하려는 마음이 뒤죽박죽이다. 잠이 오지 않는다.
밤 11시 아파가 만면에 미소를 띠며 텐트를 열어 제낀다. 에베레스트 정상 공격의 신호가 떨어졌다. ‘에베레스트야, 내가 간다. 나, 김명준이 간다.’ 한인 최고령 세계 7대륙 정복의 마지막 미개척지인 에베레스트는 그렇게 내게 가슴을 열었다.
<정리 이석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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