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잔인한 달인가. 국권을 찬탈하고 민주주의를 짓밟던 5.16 군사 쿠데타와 광주를 피로 물들인 저 광란의 대학살이 자행되던 그 5월을 보내는 감회가 깊다.
모교 서울 문리대 동숭동 캠퍼스에 흐드러지게 핀 라일락꽃을 짓밟던 군홧발들. 4.19 학생혁명으로 꽃피던 우리의 가냘픈 민주주의는 그 화사하던 라일락꽃처럼 스러지고 말았다.
그러나 우리 민중은 끝내 일어섰다. 그것도 5월에. 일방적 명령이 주도하던 파쇼 군사독재, 권력의 무한 폭력성, 저 추한 지역 패권주의, 다양성을 거부한 전체주의적 통제 등 1961년 이후 한국 민중들에게 강요되어 왔던 불의와 폭압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1980년 빛고을에 결전의 횃불이 치솟아 올랐다.
인류의 역사는 지배권력의 폭압과 횡포에 항거하여 민중이 역사의 주체가 되기 위해 벌인 끝없는 투쟁의 대장정이 아니던가. 광주는 이 도도한 투쟁 가운데 가장 치열한 일척건곤의 한 판의 승부였다. 군부가 그들이 보호해야 할 국민에게 총부리를 댄 저 광란의 광주 대학살은 26년이 지난 오늘도 기억의 언저리에서 피가 튀는 소름 끼치는 만행이었다.
정치적 부조리와 역사의 왜곡을 파헤치는 날카로운 진실의 눈빛을 가진 태양의 계절 5월이 오면, 우리는 망월동에 고이 잠들고 있는 그 날의 영웅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들의 무지개보다 더 영롱한 꿈을 펴 보이리라는 다짐, 그것이 우리 살아 남은 자들의 의무일 것이다.
그러나 이 위대한 5.18 광주민중항쟁은 당시 산화한 열사들의 고귀한 뜻이 아직도 결실을 보지 못하고 한국의 정치판은 광주와 무관한 궤적을 내닫고 있다. 저 광란의 군사 독재시대, 그것은 우리가 버둥거리며 힘겹게 살아온 과거이면서도 그러나 아직도 끝을 맺지 못하고 진행중인 현재이기도 하다. 한국의 정치현실은 과거가 오늘을 지배하고 있으며, 그래서 민중들이 좌절하고 있는 슬픈 초상이다.
광주항쟁은 8.15 해방에 따른 분단, 6.25의 동족상잔, 5.16 군사 쿠데타 등 우리가 체험한 격동의 현대사가 안고 있는 모든 모순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의였으며, 우리 민족이 더 이상 외세에 끌려 다닌 역사에 매몰되기를 거부하는 몸부림이었으나, 오늘 우리의 현실은 청산되어야 할 우리 시대의 과거가 아직도 우리의 삶을 다스리고 있을 뿐 아니라 정치질서의 보다 큰 축을 형성하고 있다. 더구나 광주의 궐기를 빨갱이의 준동 이라고 주장하던 파쇼 군사정권의 홍위병 언론들이 오늘도 수구적 논리를 확대 재생산하면서 역사를 오도하고 있다. 히틀러의 나치정권을 대변하던 제3제국의 언론인들은 모두 사형을 당했거나 자결하여 펜을 칼로 사용했던 그들의 반인륜적 죄과에 대한 용서를 구했다. 박정희를 찬양하던 구시대의 언론인들이 오늘도 우리 민중들을 오도하고 있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역사에 대한 우롱이다.
조국의 민중은 이제 정치적 무의식에서 깨어나야 한다. 그래서 정치의 가면을 쓴 군사정권의 잔당을 척결하고, 상생이라는 미명하에 과거와 오늘이 공존하는 정치권의 타협, 그리고 정당의 선단식 카르텔을 끝장내야 한다.
민중의 염원이 꽃을 피워 추악한 군사 파쇼체제가 패주하던 게 1997년 12월, 벌써 거의 9년이 지났다. 그러나 우리의 가슴에 비수를 꽂던 독재자들의 후손들이 정치와 경제계에 할거하고 있고, 민주주의와 개혁을 표방하던 정치인들이 3공과 5공의 잔재들과 타협하는 비리가 계속되고 있고, 아니 심지어는 민중을 학살하고 고문하던 자들이 국회에서 오히려 큰 소리를 치고 있는 게 현실인데도 조국의 민중들이 방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실망과 좌절이 냉소로 또 무관심으로 변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 역사의 주체가 된 민중들은 선거에서 과거의 잔재를 과감히 청산하는 데 앞장서야 할 의무가 있다. 혁명을 질서로 확립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도전이 필요하다.
비록 봄을 시샘하는 찬바람이 몰아쳐도 우리는 또 다시 라일락꽃을 피워 내야 하겠다.
Harry.Lee@usa.com
이선명/KPI통신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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