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아파트나 양로병원에서 외롭게 살고 계시는 황혼의 어르신들은 삶의 의미를 하루에도 수 백 번씩 생각하는 인생철학자가 됩니다. 생노병사의 길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인생길이지만, 유독 나에게만 머물고 기다리는 길이라고 착각하고 슬퍼하거나 두려워하는, 나 홀로의 길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르신들이 바라고 원하는 것은 장수보다는 건강이고, 부귀 보다는 기쁨입니다. 노인아파트 현관 게시판에 큼직하게 붙어있는 한 줄의 글이 있습니다.
‘눈 앞에 어른거려 다오’
하늘나라에 소망을 가지고 외로움에 찌들어 가는 어르신들의 기쁨은 물질이 아니고 만남입니다. 자식들이 온라인으로 보내는 돈이 아니라, 눈으로 보는 확인입니다. 한두 달에 한 번씩 바쁘다는 꼬리가 붙어 걸려오는 전화통에서 귀로만 만나는, 부자(副子) 아들 딸 보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보는 가난한 아들 딸을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어머니 우리 어머니’들은 자식들이 내 눈앞에 어른거려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머지 않아 눈이 어두워지고 기억을 치매가 덮치면 자식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날이 다가 오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쁘지 않을 때 찾아가겠습니다. 돈 많이 벌어 가지고 가겠습니다” 라는 녹음테이프 같은 약속을 어머니들은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어머님께 드릴 노래가 있으면 지금 불러 드리세요.
어머님께 드릴 한 송이 꽃이 있으면 지금 드리세요.
어머님께 드릴 다정한 말씀이 있으면 지금 드리세요.
어머님은 내일까지 기다려 주지 않으시니까…
그러기에 지금 어머니 눈앞에 어른거려야 합니다.
냉장고에서 썩어 나가는 갈비 불고기 떡 보다 책상 위에 쌓이는 인삼 녹용 영양제보다, 옷장에서 밖을 나와보지 못하는 밍크코트 비단옷 털신보다, 눈앞에 어른거리는 아들 딸 손자 손녀가 더욱 기다려집니다.
도시효자와 시골효자가 있었습니다. 도시효자가 시골효자를 슬며시 찾아가 보았습니다. 시골효자가 농사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어머니는 반갑게 맞이하고 세수 대야에 물을 떠다 줍니다. 아들이 세수를 하고 어머니가 주시는 수건을 받아 얼굴을 닦습니다. 어머니는 다시 대야에 물을 떠다가 아들의 발을 씻어 줍니다. 아들과 어머니는 행복한 대화가 오고 갑니다. 저녁상을 함께 합니다.
도시효자가 그것을 보고 흥분합니다. 저런 불효 한 놈이 있나, 늙은 어머니가 아들의 발을 닦게 하다니… 도시효자는 자랑합니다. 나는 큰 도시로 외국으로 바쁘게 다니지만, 어머니에게 돈도 많이 보내드리고, 사람 시켜 갈비 각 종 고기, 생선 과일 그리고 인삼 녹용 영양제 화장품, 밍크코트, 비단옷 털신을 철 따라 보내드리는데…
어머니들은 어떤 효자를 원하실까요? 아들 목소리를 전화통으로만 듣는 도시 아들보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보는 시골아들을 좋아하실 것입니다. ‘어머니 우리 어머니’들은 눈으로 보는 아들을 기다립니다.
효는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것입니다. 효는 내가 받는 보험입니다. 내 자식에게 효도를 가르치는 것은 입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내가 내 부모에게 하는 것 만큼 자식들도 나에게 합니다. 내가 부모에게 저축한 효도 만큼 자식들의 효도가 돌아옵니다. 내가 바빠서 어머님께 가지 못하면 훗날 내 자식들도 바빠서 내 앞에 어른거리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孝는 실천이요 정직한 보험입니다.
효(孝)는 흙 토(土) 밑에 아들 자(子) 입니다. 부모님이 흙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자식이 바쳐 드려야 합니다. 어버이 날에만 부모님을 식당으로 끌고 다니지 말고, 어버이 날에만 선물 싸 들고 찾아오지 말고, 해 뜨고 달 뜨는 날 마다 부모님 눈앞에 어른거리는 자식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어머니 날은 자랑하는 날이 아니라 용서 받는 날 입니다.
윤학재/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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