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옛날 깊은 산 속 통나무집에 노인 한 분이 살고 있었다. 이 노인은 세상의 온갖 지혜를 다 지닌 분이었다. 그래서 노인이 어쩌다 마을에 내려오면 온 마을사람들이 그의 말을 들으려고 몰려왔다.
어느 날 노인은 마을사람들에게 행복의 비밀을 가르쳐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조건이 있었다. 비밀을 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 한 사람에게만 말해주겠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의논 끝에 아름다움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이라 생각하고 마을에서 가장 예쁜 소녀를 보내기로 했다. 그러나 노인은 그 소녀를 돌려보냈다. 사람들은 다시 의논한끝에 가장 돈이 많은 부자를 보내기로 했다. 이번에도 노인은 부자를 돌려보냈다. 노인은 슬펐다. 고작 그런 생각밖에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실망했다.
그런데 마침 작은 새를 가슴에 안고 울고 서있는 소년을 만났다. 노인이 다가가서 물으니 다친 새가 불쌍해서 울고 있다는 것이다. 노인은 기뻤다. 이제야 행복의 비밀을 말해줄 사람을 만난 것이다. “얘야! 지금 네가 흘리고있는 눈물이야말로 가장 소중하다. 남을 사랑하지 않고는 결코 행복을 맛볼 수 없단다.”
이 일화는 우리가 사는 세상도 이런 행복의 비밀을 깨달을 때 비로소 인생이 빛날 수 있다는 의미를 전달해주고 있다. 인간이 어떤 대상을 사랑하는 태도도 이와 같지 않은가. 그것이 꽃이든 사람이든 어떤 대상을 사랑하면서 홍안(紅顔), 즉 붉고 고운 얼굴을 짓게 될 때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늙고 병들고 머리가 허옇게 되더라도 변함없을 때 그게 진정한 사랑이다.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남편을 떠나보낸 후 우리 부부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었던가를. 살아 숨쉴 때 공기의 고마움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듯 부부가 함께 누리고 있을 때는 부부로서의 귀중함을 모른다. 그래서 살아있을 때만이 사랑이 아니고 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더욱 간절히 그리워하며 사랑하는 것이 참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남편이 떠나간 빈자리에서 추억을 반추하며 사는 것이 슬프지만 때로는 작은 행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지금 시대는 물질이면 무엇이든 다 된다고 믿는, ‘사랑의 부재 시대’라고도 한다. 아무리 뛰어난 방화범도 사랑의 불을 지르지는 못하고 아무리 뛰어나고 유능한 소방관도 사랑의 불을 끄지는 못한다. 그래서 가장 희생적인 사랑만이 병을 잘 낫게 하는 약이라고 하지 않는가.
오늘 나의 행복은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특별히 내세울 것도 없고 소박하여 조건이랄 것도 없다. 아침에 일어날 때 특별한 근심이 없고 가정 이룬 두 아이, 네 손자 안에서 지혜롭고 건강하게 지내길 감사기도 드린다. 그리고 교회 교우들과 글벗 친구들, 다정한 이웃이 있어 내 삶은 풍요롭다.
이제는 나의 삶을 일깨워주는 손자 앞에서 나는 지금 어디까지 왔는가. 그러나 나는 어디에도 도달하지 않고 있음을 깨닫는다. 때로는 주어진 현실이 무거워도 주 안에서 오직 감사요, 이제는 시선을 돌려 나보다 어려운 이웃들을 향해 내가 가진 작은 것이라도 나누며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
그 동안 앞만 바라보며 바쁘게 살아온 삶, 이제는 인생을 길게 내다보며 삶의 활력소를 갖고 행복의 비밀을 찾아가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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