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어머니 이향숙 씨, 아들 배한웅 군, 아버지 배인호 씨.
고성능 보청기 끼고도 입모양 살펴가며 겨우 더듬더듬
초등3학년 때 유학온 콩코드하이 배한웅 군
97년 2월27일, 배씨네 네식구는 김포공항을 떴다. 대개들 부러워하고 더러는 배아파하는 미국행. 그러나 배인호씨(피츠버그 USS포스코 근무)-이향숙씨 부부의 마음은 아렸다. 선천성 청각장애를 앓는 딸(우리, 초등5) 아들(한웅, 초등3)에게 더이상 왕따 설움이라도 덜어주려는 발길이었으니. 딴 애들이 놀리니까 싸우고 울고 애들은 애들대로 힘들고, (학교진도에 맞춰) 집에서 다 다시 가르쳐야 하니 집사람은 집사람대로 힘들고, 도저히 안되겠더라고요.
샌프란시스코공항에 내렸다. 직장 가까운 앤티옥에 터잡았다. 수화로 구화(입모양 해독대화)로 어렵게 한글을 깨우친 남매를 깜깜 영어학교로 보내는 부모 가슴은 또 미어졌다. 공부고 뭐고, 구김살없이 행복하게만… 더이상 바람은 없었다.
그런데 미국학교는 과연 달랐다. 못 듣는다 놀리는 녀석도, 말 서툴다 골리는 녀석도 거의 없었다. 거기다 선생님들의 따스한 배려. 그것만 해도 배씨 부부는 오길 잘했다고 안도했다. 달라진 환경에 남매도 달라졌다. 특히, 놀림감 유치원생때도 잡았다 하면 두세시간 꼼짝없이 책을 판 집중력만점 한웅이 눈에서는 더욱 생기가 돌았다. 학교수업, 가정학습, 월넛크릭 JC교육센터(원장 지니 황) 토요과외로 영어의 짐도 나날이 가벼워졌다. 마음 비운 아버지에게 슬며시 욕심이 생겼다. 실은, 가능성을 시험하고픈 것이었다.
“장애인에 희망주고 전인류에 도움주는 로봇 만들어 노벨상 받고파”
처음에는 적응하느라 고생했지요, B도 있고 C도 있고. 점점 나아지길래 ‘하는 김에 한번 해봐라. 올A를 한번 받아봐라’ 했는데 진짜로 해내더니, 그 담에는 전과목 AP클래스를 신청해서 어느 학기엔가 그것까지 올A를 받아 선생님도 놀라고…
황 원장도 놀랐다. 무엇보다 학구파 노력파에요. (듣는 데) 문제가 있어서 선생님들이 스트레스 표시를 했을텐데 다 감당하면서 ‘저 선생님 싫어’ 그런 소리 한번 안하고 숙제 다 해오고. (성적이) 업다운하면 대부분 과민반응을 보이는데 쟤는 그런 것도 없었고, (대학) 합격증 받고나면 안나오는 학생들이 많은데 변함없이 토요일마다 와서 하던 대로 계속해요. 그런 노력이 쌓여서…
3월30일, 브라이언(한웅이의 영어이름) 배 앞으로 날아든 UC버클리 공대합격 통지서는 어머니 이향숙씨를 또 울렸다. 반듯하게 잘생겨 사랑을 독차지하던 한웅이가, 얼러주면 방긋 웃던 한웅이가, 열달이 지나도록 첫돌이 지나도록 엄마 소리조차 못해 설마설마 하면서도 또 그 말(청각장애)을 들을까 두려워 미루다 노크한 병원에서 끝내 그 말을 듣고 억장이 무너졌던 순간, 딸도 모자라 아들까지냐고 하늘 향해 울부짖은 기억들, 재잘재잘 유치원을 오가는 딴집 아이들을 훔쳐보며 한웅이를 안았다 걸렸다 업었다 언어치료원으로 발품을 팔던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집사람이 정말 고생 많았어요. 저 없는 동안(03년말 본사귀임-06년3월 재부임) 혼자 두 애들 데리고… 거듭 말한 배씨는 덧붙였다. (오클랜드 사랑의선교교회) 한성우-한수지 집사님 부부께서 신앙적으로 등불이 돼주셨고요. SF검도협회장인 한 집사는 한웅(1급) 남매의 검도스승이기도 했다.
고성능 보청기를 끼고서도 가물가물 들려 입모양을 뚫어지게 살펴야 하는 한웅이는 어머니 ‘통역도움’을 받아가며 한때 의사를 꿈꾸었다 ‘예비 공대생’답게 바뀐 새 꿈 새 날개를 펼쳐보였다.
나 같은 장애인들한테 꿈을 주고 싶어요. 청각장애인이라도 불가능한 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끝까지 열심히 해서, 인류에 유익한 로봇을 만들어서, 한국 장애인 처음으로 노벨상까지 받아보고 싶어요.
한웅이의 누나 우리양은 워싱턴DC 소재 청각장애자전문대학에서 한 학기를 마치고 돌아와 플레젠트힐 소재 DVC와 인근 커뮤니티칼리지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다. <정태수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