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에 오르기 전날 솜사탕 같은 엉성한 잠에 설친 것은 30여 년만에 찾아보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었을까 아니면 백수를 하시고도 한 해를 더 사시고 돌아가신 어머님을 품에 모시고 가는 만가(輓歌) 없는 슬픔 때문이었을까.
30년만에 보는 한국의 산과 들은 별 차이를 느끼지 못했으나 내륙 쪽으로 크고 작은 도시들은 저녁 연기에 잠겨있는 듯하고 책장에 진열된 전집처럼 나란히 세워진 하얀 아파트만 보이고 있었다. 강원도 가는 고속도로 주변으로 겹겹이 세워진 납작한 고층아파트는 시야를 가려 숨통을 조이고 높고 낮은 산자락에는 어김없이 명당을 자랑하는 듯 잘 가꾸어진 산소들이 보여 나의 눈을 젖게 했다. 고속도로 주변으로 보이는 것은 온통 먹을거리 간판뿐이었다. 소양강이 내려다보이는 오지의 작은 산골 구비구비 길가에도 어김없이 추어탕, 보신탕, 러브호텔들이 명당에 자리잡고 있었다.
별장이 있는 인제에서 어머니를 산골(散骨) 해드리고 하루 묵어 고향을 찾아오는 길은 수원이 가까워질수록 하늘을 대기오염과 황사현상으로 햇빛이 차단되어 시계가 없어도 해를 보고 때를 가늠했던 옛날은 사라진지 오래인 듯하고 하수도, 개스의 도시 냄새는 나의 목을 칼칼하게 만들었다. 간판 누더기를 입은 빌딩과 공간없이 세워진 아파트, 경쟁적으로 지키지 않는 교통질서는 조수석에 앉아 있는 나를 수없이 곧추세웠다.
한치의 공간도 없이 참빗처럼 세워진 아파트, 모스크바의 붉은 별을 연상케하는 수많은 교회의 붉은 십자가, 도시미와는 전혀 다른 건물들의 혼란은 나를 실망시키켰다.
모든 것이 발전되고 변했다는 말 대신에 천지개벽이라고 해야될 상전벽해의 변화가 내게는 자랑과 긍지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곧 쇠락으로 접어드는 콘크리트 문화를 연상케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헐어버리고 다시 지어야할 운명을 감지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대한민국 전체가 밤낮 가리지 않고 삽겹살 구이와 소주로 넘쳐나고 별이 보이지 않는 밤하늘은 붉은 십자가가 뒤덮고 있다. 그니와 함께 걸었던 솔뿌리 얽힌 유명한 서호의 수정 같은 물은 매몰된 조호가 되어 썩어 있고 원두막에 앉아 복숭아를 먹던 밭은 온통 먹거리 골목으로 변해있었다.
목감기 치레로 병원엘 다니면서 공기 맑은 칠갑산과 청양에서 40여 년 전의 전우를 만나 청야에서만 난다는 구기주로 고사리 안주 삼아 점심을 먹고 서해 고속도로로 해남 일대를 누비고 완도에서 일박한 후 그 이튿날 돌아본 향일암에서 아득하게 내려다 보이는 여수 앞바다의 절경을 본 순간, 아! 고향이 꼭 수원이라야 될 이유가 없다, 이 아름다운 향일암에서 내려다 본 여수 앞바다도 내게는 고향이 아닌가 하는 다짐이었다. 내가 자란 고향, 샘내라고 불렀던 천천리는 없어졌지만 실향의 병을 앓게 하는 내 고향 샘내는 향일암에서 내려다 본 어지럽도록 아름다운 여수 앞바다에서도 있었다.
실향의 병은 먼 훗날 어머니를 묻고 돌아선 나에게 잃어버린 고향을 찾아가는 마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리동원 락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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