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삶
▶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신호등이 노란불에서 빨간불로 바뀌자 유나는 놀라서 급정거를 했다. 유나는 자기도 모르게 상스러운 욕을 내 뱉었다. 그리고 스스로 부끄러워서 손으로 입을 가렸다. 유나는 빨간불을 저주의 신호등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나는 예전에 소위 홍등가라고 불리는 여러 곳을 전전하는 늪의 기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불현듯 예쁜 영미의 얼굴이 떠올랐다. 훤칠한 키에 어께가 넓다고 늘 부끄러워했던 영미다. 둘은 단짝으로 고교를 졸업하고, 영미는 서울서 대학입시를 재수하고 있었다. 유나가 화장품 점원을 그만두고, 직장을 찾아 서울에 왔을 때, 영미는 입시에 낙방을 하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있었다. 유나는 영미를 달래려고, 화사한 옷을 입혔다. 영미의 예뿐 얼굴에 매혹적으로 화장을 했다. 둘이 명동을 걸을 때, 지나가는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둘을 넋 없이 바라봤다.
창문이 명동성당을 향해 활짝 열린 빵집에 앉아서 둘은 신나게 서너 개의 사라다 빵을 먹어치웠다. 천천히 뜨거운 코코아를 마셨다. 창 아래로 수없는 사람들의 머리가 물 흐르듯이 지나갔다. 어두움이 오자 영미의 기분이 살아났다. 영미는 유나의 손을 끌고 강남으로 갔다.
디스코텍에 들어서자 영미는 할 줄 모르는 술을 시켰다. 유나는 말렸지만 영미는 막무가내로 마셔댔다. 젊은이들이 계속 둘을 괴롭혔다. 장발을 한 한 무리의 청년들이 영미를 억지로 춤을 추자고 끌어냈다. 유나가 애를 써서 막는데도 당해 낼 수가 없었다.
이때 머리가 단정한 참한 모습의 청년이 그들을 막아섰다. 무리의 청년들이 그에게 벌떼같이 달려들었다. 가냘프게만 보이던 청년은 순식간에 몸을 날려 대여섯 명을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닥에 누였다.
둘이 아침에 깨어난 곳은 이름 모를 호텔이었다. 험상궂은 사람들이 문을 지키고 있었다. 이날부터 둘은 끝없는 치욕의 인간시장에 끌려 다녔다. 영미는 유나를 보호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영미는 이 지옥 생활의 책임을 자기에게 돌렸다. 버는 돈 전부를 자기들을 감금한 불량배를 회유하는데 썼다. 탈출을 몇 번 씩 기도 했지만 실패했다. 곧 일본의 야쿠자에게 팔려 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영미는 언니처럼 유나를 달랬다. “그래, 우리는 일본에 가는 거야, 그리고 미국까지 가자.” “이번에 다시 시작하는 거야.”
부산 부두에는 아주 단정하게 차림을 한 낯익은 청년이 기다리고 있었다. 둘을 호송한 불량배들이 그 앞에서 굽신거렸다. 청년은 민우라고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청년 뒤에 있던 일본인들이 덩달아 영미와 유나를 극진히 대했다. 도쿄의 생활은 민우로 인해 훨씬 자유스럽고, 호화스런 생활로 바뀌었다. 아주 고급스런 사교모임에 정치인, 경제인들.
말없는 민우는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영미는 태연하게 이 변화를 즐겁게 받아드렸다. 유나는 민우가 보고 싶었다.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아 스스로 놀랬다. 어느 깊은 밤. 민우가 사람을 보냈다. 봉투 안에는 동경발
LA착 편도 비행기 표와 일본회사 화장품 대리점 파견서가 들어 있었다.
유나가 직장에 도착하자, 일본인 지점장이 상량하게 인사하며 편지를 전해주었다. 캐나다에서 온 영미의 편지였다. 영미는 민우얘기부터 썼다. “유나야, 슬픈 이야기를 전해야겠구나. 민우는 너를 보내고 손가락 하나를 잘렸단다. 그리고 나를 캐나다에 보내고 기어코 자결을 해야 했단다. 우리 때문에 그가 조선인으로 야쿠자의 일인자 자리를 홀연히 내버렸지.” “그가 마지막 남긴 말은 너를 사랑했다고 했단다.” 어서 너를 보고 싶구나.
바보 언니 영미가.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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