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동안 인내와 노력을 통하여 목적하는 순수한 포부와 희망을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정성과 노력을 쏟는다면 마침내는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되며 희열 넘치는 기쁨의 보상을 받게 된다. 이런 과정을 ‘Long delayed gratification’ 이라고 미국사람들은 표현할 것이다. 이 기쁨을 나의 50년 미국생활 속에서 찾아보려고 한다.
나는 1956년 훌륭한 하피스트(Harpist)가 되려는 큰 꿈을 품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해 2월 드디어 인디애나 주에 있는 빈센스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고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 전문대학에는 음악과는 있었으나 ‘하프과’는 없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듯이 그 당시 대학 총장 백커스 박사님은 나에게 자기 친구 크라포드 목사님 부인을 소개하였으며 그 부인은 드포 대학 하프 교수였다. 100마일 떨어진 곳이었으나 주말이 되면 그곳에 가서 그 댁의 가사를 돌보아주며 하프 레슨을 열심히 받았다. 이 모든 분은 나를 위한 첫 천사들이었다.
그해 가을 하나님께서 저에게 좋은 배필을 만나게 하시고 워싱턴으로 옮겨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게 하셨다. 나는 아메리칸 대학에 편입했고 그 대학에서 하프 공부를 계속했다. 그때 워싱턴 오케스트라의 훌륭한 하피스트인 실비아 마이어를 통해 본 대학 국제외교과 학장 딸의 하프를 빌리게 되며 그 분은 그 하프를 내가 사는 보잘것없는 아파트까지 갖다 주셨다. 또 자기 제자인 볼티모어 심포니 오케스트라 하피스트를 소개해 지도를 받게 해주신 훌륭하고 자비로우신 분이었으니 그 분 또한 나에겐 그지없는 천사였다.
나를 지도해주시던 교수님도 이듬해 타 주로 이사를 하였고 같은 해 귀한 하나님의 선물로 아들을 갖게 돼 가정을 갖고 하프 공부한다는 것은 시간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어려운 일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하프 공부를 지체시키시고 전공 방향을 교육학으로 바꾸게 하셨다. 나는 도미 유학 시 부모님과 약속한대로 꼭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귀국하여 교육에 이바지할 다짐을 갖기로 했다.
그 동안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 인내하며 박사 학위를 취득하여 부모님과의 약속을 지켰으나 나는 고국으로 돌아갈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지난 32년 동안 미국 교육계에서 초, 중학교 교사로, 또는 부교장으로, 여름학교 교장 등으로 나의 정성과 열정을 다 쏟아 부었다.
나는 2년 전에 은퇴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나는 설사 훌륭한 하피스트가 되지 못했으나 하나님께서는 나의 꿈을 잊지 않으시고 아름답고 웅장한 콘서트 하프를 사게 해주셨고 다시 하프를 공부할 수 있게 훌륭한 교수님을 만나게 해주셨다. 이 모든 일은 나의 꾸준한 기도와 신앙의 결실 속에 이루어지는 크신 은총임에 틀림없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는 성경 말씀을 붙잡고 오늘날까지 나는 살아왔다. 이 긴 세월이 지났지만 하프를 공부하겠다는 꿈을 잃지 않고 꾸준히 인내하며 간구하였더니 다시 하프를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새해 2006년은 나의 새로운 삶의 도전이 되기를 기원한다.
서숙희 <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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