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명소인 소피아 박물관.
독자 여행기 그리스·터키 <3·끝>
노정열씨
박해받던 초대 기독교인 〃피의 절규 ˝생생
지하 미로 10km, 1만여명 거주
교회·학교·시장등 생활공간도
어슴푸레한 새벽녘에 차창을 통해 보이는 도시 근교는 온통 흙색의 향연이었다.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란 나는 금방 이 나라 땅이 비옥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나라에서는 농약을 전혀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가는 곳마다 음식이 너무 맛있다.
채소와 과일은 바로 밭에서 따온 것 같이 신선했다. 온갖 샐러드 위에 뿌려진 현지 생산 올리브유가 그렇게 맛있고 향기로운지 전에는 몰랐다.
추수하는 계절인데도 불구하고 소규모의 목화 밭과 올리브 밭 외에는 추수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 넓고 넓은 터키 땅은 대부분 놀고 있었다. 이 땅을 전부 경작한다면 전 유럽이나 아니 전 아프리카를 먹여 살리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편하고 순진해 보이는 터키인들, 가는 곳마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첨탑들과 하루에 5번 울리는 이슬람 기도소리가 기이한 선율로 귀에 다가왔다. 나는 그들의 신앙심에 진심으로 경이를 보냈다.
기독교 박해지역인 카파도키아(Cappadocia) 국립공원에서 본 괴암 굴들은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지 할 말이 없다. 수백만년 전 인근 활화산에서 폭발한 화산재가 바람에 불려와서 쌓이고 또 쌓이는 동안 안으로는 무시무시한 침식과정을 겪으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세계 8대 불가사이라고나 할까. 터키를 방문하는 사람은 결코 이 곳을 지나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초대 기독교인들이 로마 황제의 박해를 피해 250년간 은신생활을 했던 곳이다. 두 개의 큰 동굴은 10km의 길로 이리저리, 위아래 사방으로 미로를 만들고 있다. 동굴도시의 전 인구는 1만여명, 방은 2,400개 정도였다고 한다. 이 동굴도시에는 교회, 학교, 시장 등의 생활공간을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그 훨씬 이전에는 아마 원시인들이 살았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이스탄불, 활기찬 도시다. 전문가가 아닌 나 같은 여행객의 눈으로, 피부로 전달되는 이 도시의 엄청난 에너지는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인가? 그 지형적 조건, 즉 육지로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고, 바다로는 흑해, 에게해, 지중해에 깊숙이 몸담고 있는 이 점이 바야흐로 동서 문화, 경제, 교통의 중심지가 되기에 합당했다는 것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소피아 박물관(전 성당), 불루모스크를 포함한 이슬람 사원들의 침봉이 여기저기 우후죽순 같이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는 장엄한 모습들은 여행객들에게 적지 않은 감회를 선사했다. 세계의 수도를 정한다면 이스탄불이 될 것이라는 말은 지당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20대라면 이 곳에서 세상을 다시 한번 멋지게 살아보고 싶은 충동을 보스포로스 해협 관광선을 타고 마르마라해를 가르면서 느꼈다.
근대사에 있어서 오토만 새 공화국의 탄생과 멸망 그리고 마지막 황태자의 슬픔이 서려 있는 땅. 6.25동란 때 우리 조국 한반도에 참전했던 나라. 그래서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며 반가워하는 터키인들, 터키는 남다른 애정이 가는 나라이다.
이리하여 아테네, 고린도, 델피, 데살로니카, 빌립보, 버가모, 에베소, 안디옥, 카파도키아, 이스탄불로 이어지는 10박11일의 여정이 숨차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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