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까지 나는 3월이나 4월에 서울에서 일어날 2개의 뉴스를 머리 속에 혼자 그려보고 있었다.
하나는 지난 수퍼보울의 MVP 하인스 워드와 그의 어머니이다. 아마도 어느 항공사가 일등석에 무료로 모시게 됐다고 자랑스럽게 소개되는 것을 시작으로 인천공항 도착에서 기내영접, 비행장 출구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드는 환영인파, 일생을 소개하는 TV특집, 그리고 서울시장의 명예시민증 수여 및 행운의 열쇠 증정, 그리고 글쎄 청와대 방문까지 할까? 장한 어머니 상은 또 누가 줄 것인가.
또 하나는 토비 도우슨이다. TV 특집에 나와 어린 시절 이야기, 사춘기에 느꼈던 소외감, 눈물샘을 흔드는 이야기, 그러다가 맨 마지막에 어머니, 또는 아버지 하고 소리지르면 TV 구석의 문이 열리면서 내가 나쁜 놈(년)이야 하는 장탄식과 함께 서로 얼싸안고 우는 장면 등등. 글쎄 나중에 시골에 내려가 같이 할아버지 할머니 무덤에 절하는 장면 하나 더 보태려나.
그러다가 오늘 아침 한국신문을 보니 토비 도우슨이 너무 집중되는 뉴스초점에 정신적인 부담을 느껴 3월에 계획했던 서울행을 당분간 안 하기로 했다는 기사가 나와 있었다.
그 기사를 읽으면서 몇 개의 화면이 나의 뇌리를 스쳐갔다. 하나는 토비 도우슨 선수가 모굴 스키에 골인하는 바로 피니시 라인 앞에 그의 어머니(기른 어머니)가 환한 기쁨의 얼굴로 만세를 부르는 장면이 하나이고, 또 하나는 그의 갓난아기 시절의 사진과 함께 내 머리 속에 박혀있는 홀트 재단이란 입양기관, 또 고아수출이 세계에서 일등이란 기사를 읽은 기억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 자신이 토비 도우슨의 양어머니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것 같았고 그러면서 그 잘난 진보니 인권이니 민족이니 하면서 떠들어대던 네티즌, 시민단체 그리고 정치꾼들이 생각나면서 그들에게 분노와 미운 마음을 지워버릴 수 없었다.
실인즉 이렇게 장황스럽게 떠들어대는 이유는 어제 나의 형님과 점심을 하면서 나눈 대화 때문이다. 형님 말인즉 며칠 후 워싱턴 DC의 H라는 대학원 부학장과 점심 약속이 있단다. 그 대학은 흑인들이 대다수이고 흑인들의 명문대학이다. 이 대학 대학원생 3명이 그 부학장의 알선으로 이번에 미국과학원의 후원으로 몇 달 기술분야의 인턴십으로 한국에 간단다. 그 점심 약속에 바로 그 대학원생 3명과 함께 나오겠으니 한국에 대해서, 또 한국사회, 한국인과 같이 지낼 때 도움이 될 말을 해달라고 했단다.
자리에 앉자마자 대뜸 형님이 먼저 나에게 아직도 한국인들이 ‘흑인’ 깔보거나 얕보는 사람들이 있냐고 물어왔다. 사실 나는 아니요 하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그들 흑인 대학원생들에게 한국인들은 세계화시대에 바보 같은 짓인데도 자기들이 단일민족이라고 하는 것을 대단한 자부심으로 아직까지 느끼고 있다, 그래서 타민족에 좀 멸시 또는 무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관습일 뿐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의 바탕은 가지고 있다, 정도로 얘기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고 결론지었다는 대화였다는 말이다.
단일민족, 한민족이라 떠들면서 자기핏줄이 아니면 해외입양이 되든 어찌되든 관심도 없는 ‘우리’, 그런가하면 어느 때는 ‘우리 단일민족’이 아닌 타민족을 우리가 별로 잘한 것도 아니면서 우습게 여기는 ‘우리’, 세계화해 나가는 이 세계에서 ‘우리끼리만’ 울타리를 치고 어찌 살려는지 걱정이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3명의 흑인학생, 인턴을 마치고 귀국할 때 마음에 상처를 입고 한국을 미워하는 마음을 갖고 돌아올까 봐 걱정이 됩니다.
이영묵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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