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와서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이 우리 나라 국민성을 평할 때 한국 사람은 하나 하나 놓고 보면 참으로 부지런하고 우수하며 훌륭한데 단결력이 약하고 협동하는 정신이 부족하다고 한다. 협력보다는 비난을 먼저 하며 협조하기 전에 파기부터 하고 돕기는커녕 약하다고 생각되면 깔아뭉갠다.
두세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은 것은 서로 협력함으로 많은 일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위대한 것은 협동의 산물이 아닌가.
협동이 바로 힘의 원천이다. 협동을 잘하는 가정이 행복하고 협동을 잘하는 사회가 번영하고 협동을 잘하는 교회가 부흥하며 협동을 잘하는 민족이 부강해진다. 현대는 개인의 시대가 아니라 팀웍을 해야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알게 모르게 오랫동안 유교적인 전통 속에서 제 앞만 가리는 것에 치중하고 살며 이웃에 대한 일에는 별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결과로 은연중에 이기적인 생활태도가 우리 인생관과 사회 저변에 깊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다른 사람을 돕는다 거나 협력하는 일은 헛되이 흩어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어느 때인가는 반드시 돌아오게 마련이다. 그러니까 협력하고 협동하며 돕는다는 것은 결국에 가서는 자기를 돕는 일인데 사람들은 눈앞만을 보고 조급하기 때문에 이런 일을 선뜻 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사실 우리 생활 현장은 늘 삭막하고 외로우며 기쁨과 보람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나누고 협력하자. 그러면 우리가 다 경험하듯이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 편에서 먼저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게 되지 않던가.
성자 선다싱의 생애, 히말라야 눈꽃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다.
눈보라 치는 어떤 날 그가 티벳 사람 한 명을 데리고 눈 덮인 히말라야 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앞을 분간할 수 없는 눈보라 속에 한 명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냥 두면 얼어죽을 것 같아 동행자에게 둘이 번갈아 업고 가자고 제의했더니 그 동행자는 “그러다가는 우리도 얼어죽는다. 나는 살아야겠소”하며 매정하게 뿌리치고 가버렸다. 그러나 선다싱은 그 눈 속에 쓰러져 아직 죽지 않고 있는 그 사람을 그대로 버려 둘 수 없어서 다음 마을까지 가서 인가에 의탁하려고 업고 사력을 다해 걸었다. 그런데 고갯마루에 거의 다다랐을 때 하나의 동사체를 발견했다. 가까이 가서 살펴본즉 바로 몇 시간 전 자기만 살겠다고 혼자 가버린 티벳 사람이었다. 그는 혼자 가다가 체온이 내려가 눈더미 속에서 견디지 못하고 결국 얼어죽고 말았다. 그러나 선다싱은 사력을 다해 그 얼어 있는 사람을 업었다가 안았다가 하면서 갈 때 서로의 밀착된 체온의 열기로 말미암아 두 사람은 모두 살아 남았다.
사람들은 어리석어서 이토록 자명한 진리를 두고도 실행할 줄을 모르고 있다. 나도 못 살겠는데 어떻게 남을 돕겠느냐는 사람이 많으나 그것은 정말 어리석은 처세술 아닌가. 남을 살리는 속에 나도 살고 남도 사는 길이 트인다는 진리를 우리 이제는 실천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박석규/은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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