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영적 동물이다. 그래서 사람만 문화를 창조한다. 이 가운데 종교는 우리들의 삶에 밝은 빛과 함께 어두운 먹구름을 던져 주기도 한다.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의 말처럼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와 같은 이른바 고등종교들의 장점을 가려볼 수 있는 표준 가운데 하나는 이 종교들의 신조와 이를 신자들이 얼마만큼 잘 지키고 사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그 성적이 가장 좋은 종교는 이슬람교인 것 같다. 이번 마호메트 만평 사건도 그래서 터진 것이다. 무슬림은 이슬람교에 도전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무력을 써서라도 무찔러야 한다고 배우기 때문이다. 오늘 여기 저기서 터지고 있는 과격파 무슬림들의 무력 테러는 바로 그들의 신앙고백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종교는 우리들의 친구가 아니라 우리들의 적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고 모든 종교가 다 그러한 것은 물론 아니다. 인도에서 출발한 불교와 힌두교는 팔레스타인에서 비롯된 기독교와 이슬람교보다 그 관용성의 폭이 큰데 반하여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그 배타성과 불관용성의 폭이 너무 크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 이 배타성과 불관용성의 기질은 기독교나 이슬람교나 둘 다 똑같이 유대교로부터 계승받은 선천적 기질이다.
이 배타성의 기질은 곧 신은 ‘질투하는 자’란 신관에서 비롯되었다. 이 신관 때문에 무슬림들은 알라신이나 마호메트를 모독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무력을 써서 맞서는 것이다. 이슬람교뿐만 아니라 기독교도 마찬가지다. 다만 신은 ‘사랑의 신’이란 다른 한쪽의 신관 때문에 기독교 신조에 무관한 일엔 사랑을 베풀지만 신조나 교리에 어긋날 때엔 그 배타성의 기질이 여지없이 나타난다.
그래서 다른 종교와 대화가 이뤄지지 않는다. 이슬람교의 신조가 단순하기 때문에 무슬림들이 그 신조대로 쉽게 실천하는 반면 기독교의 신조는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크리스천들이 그 신조대로 생활하기가 어려운 것뿐이다.
종교는 인간이 인간 이상의 능력자를 발견할 때 시작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수명은 일 세기를 넘지 못한다. 그래서 그 이상의 수명을 누리기 위한 수단을 찾는 데서 종교가 시작된다. 따라서 어느 종교에든 내세관이 있다.
다음 세계에서 잘 살기 위해서는 오늘의 삶을 더 옳게 살아야하는데 그렇지 못한 삶을 사는 종교인들 때문에 종교는 우리의 참 친구가 되지 못하고 적이 되고 있는 것이다. 막스 페루츠는 “과학자는 인류의 친구인가 적인가?”하고 물었다. 과학이 우상이 될 때 그 과학은 인류의 흉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종교도 맹목적인 우상이 될 때 그 종교는 우리의 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윤 아브라함/ 명예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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