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한 사람에 대한 평가인가 싶게 양쪽의 말이 다르다. ‘미국인의 기본권을 위협할 요주의 인물이다’ ‘헌신적으로 법을 수호할 최고의 법관이다’ ‘약자에게 관심없는 냉담한 엘리트다’ ‘성실하고 사려깊은 인격자다’ ‘낙태권 합법화 판결을 뒤집고 공권력의 사생활 침해를 허용할 것이다’ ‘어떤 기준을 적용해도 흠잡을 데 없는 법관을 정치적 목적으로 왜곡하지 말라’…공화당 의원들이 바친 찬사 일색과 민주당 의원들이 던진 강한 비판이 너무 대조적이다.
마치 두개의 얼굴을 가진 야누스처럼 묘사된 대상은 새뮤얼 얼리토 연방대법관 지명자다. 이틀전 연방상원 법사위에서 인준을 받았고 늦어도 다음 주엔 상원 본회의 인준도 받을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110번째 미 연방대법관으로 취임할 얼리토의 출발은 그리 산뜻하지 않다. 인준 심의가 대법관의 자격검증보다는 첨예하게 대립한 당쟁의 성격을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인 것이다. 법사위 인준이 공화10명 찬성에 민주8명 반대로 완전히 당론투표가 되어버린 것은 90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본회의 표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 지지는 거의 받지못한 ‘당파적 대법관’으로 몰아 갈 분위기가 역력하다.
얼리토 자신의 책임은 아니다. 가장 큰 원인은 그가 샌드라 오코너의 후임이기 때문이다. 오코너는 공화당 레이건 대통령이 지명했지만 취임후 실용적 중도파로 대법원의 균형을 잡아왔다. 5대4로 판결된 148개 케이스에서 스윙보트 역할을 한 것이 오코너였다. 낙태에서 민권에 이르기까지 오코너의 지지로 살아남은 진보 이슈가 하나 둘이 아니었다. 그가 은퇴를 발표했을 때 “레이건의 최대 실수가 드디어 사라진다”고 보수진영에서 환호했을 정도다. 반대로 민주당에선 거의 ‘성녀 오코너’로 숭배 받아온 그의 빈자리를 메꾸자니 얼리토의 시련이 크지 않을 수가 없다. 더구나 얼리토의 보수성향은 15년 항소판사 경력에 의해 너무나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어 개인의 이념성향을 판결에 반영하지 않을 것이라는 설득이 전혀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얼리토의 대법원’은 ‘오코너의 대법원’과 확연히 다를 것이다. 앤토닌 스칼리아 및 클레어런스 토머스와 신임 대법원장 존 로버츠가 손잡은 강경보수 리그에 얼리토가 합류해 루스 긴즈버그, 데이빗 수터, 스티븐 브레이어, 존 폴 스티븐스가 연대한 진보 리그와 대결구도를 이룰 것이다. 희망적 변수는 그동안 보수로 꼽혀온 앤소니 케네디다. 그가 지난 주 오리건주 관련 판결에서 부시행정부의 월권을 책망하며 안락사를 지지했다. 앞으로 스윙보트가 될 가능성을 보인 것이다. 그래도 굳이 가르라면 케네디를 포함해 판도는 5대4로 보수가 우세하다.
대법원의 다양화가 일보 후퇴할 것도 짚어둘 만하다. 얼리토의 입성후 대법원을 공약수로 정리해보자. 9명중 8명이 백인, 9명중 8명이 남성, 그리고 9명중 8명이 아이비리그 출신이다. ‘외로운’ 1명은 흑인 토머스, 여성 긴즈버그, 그리고 노스웨스턴법대를 졸업한 스티븐스이다. 아이비리그 출신의 백인남성 대법관 스칼리아는 “같은 문제에 여성의 법적 해석이 다르고 남성의 법적 해석이 다르다는 발상은 웃기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아이비리그 출신 백인 남성에 대한 반감을 가질 건 없다. 그러나 여성과 남성, 백인과 유색인종, 머조리티와 마이너리티, 부유층과 빈민층이 한 사안을 해석하는 시각은 많이 다르며 이 다른 시각이 대법원 판결에 다양하게 반영될 수 있다면 사회정의 구현에 훨씬 도움될 것은 누가 보아도 분명한 사실이다.
얼리토가 취임하면 보수진영은 행정부와 입법부에 이어 사법부도 장악하게 된다. 미국사회 보수화를 목표 삼아온 이들에게 가장 큰 걸림돌이 되어온 대법원의 보수화가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민주당이 얼리토 인준을 캠페인 이슈로 삼아 가을 중간선거로 끌고 가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개인보다는 정부의 권력 확대를 지지해온 얼리토의 대법관 인준은 현 세대 뿐 아니라 다음 세대까지 미국인의 기본권과 자유를 위협하는 것”이라는 민주당 중진의원들의 ‘위협’을 그대로 믿고 걱정할 것 까지는 없을 것이다. 또 이들이 기대하는 얼리토 인준파장이 11월 선거까지 계속될 수 있을지, 반대로 ‘국론분열 조장’이라는 역풍을 맞을지도 지금으로선 확실치 않다. 그러나 사법부를 빼앗겼으니 입법부, 특히 상원을 재장악하여 권력의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민주당의 전략은 이념논쟁에 무관심한 보통 사람들에게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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