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생각
▶ 정상대 <워싱턴 한인연합회 자문>
미국 속담에 덩치 큰 사람이 더 큰 물레바퀴를 돌릴 수 있다는 얘기가 있다.
나는 1984년 워싱턴 지역에 이주해 왔다. 내 기억에 1986년 가을 두 번째 워싱턴 한인회장 선거에 참가, 투표했다. 당시 워싱턴 한인회장 자리는 힘(?)이 있었다. 한인회 모임이나 송년잔치에는 비행기표 기대에 DC 아모리 체육관이 메어졌다. 한인들의 회비, 기부금이 많아 회장단에게 힘과 용기가 되기도 했다.
단체는 시대 상황에 따라, 또는 조직의 목적, 구성원, 회칙의 내용에 따라 그 조직이 약해지기도 하고 강해지기도 한다. 즉 정(正), 반(反), 합(合) 과정을 거치며 발전해간다고 생각한다. 최근 수도권 메릴랜드 한인회장이 라디오에 나와 한인회 통합문제에 전임 회장들이 결사반대 한다는 얘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 내가 사는 버지니아와 메릴랜드 지역은 주법이 다르니 내가 언급치 않는 것이 예의이다.
며칠 전 한인연합회 이사회에 참석했다. 현 회장단의 회장, 이사장, 회칙개정위원장은 과거 북버지니아 한인회 부회장, 회장, 직업학교 이사장을 열심히 하신 분들이다. 나는 한인연합회 회칙개정위원장에게 지난 15년간 한인회, 한인사회를 위해 열심히 봉사한 분이니, 또 과거 북버지니아 회장으로 속사정을 잘 알고 있으니 20년 동안 분할된 한인연합회와 북버지니아 한인회의 통합추진위원장을 맡아 워싱턴 한인회로 재탄생 시켜줄 것을 제안했다.
미국 수도가 필라델피아에서 이곳 워싱턴 DC로 오기 전 DC 지역은 버지니아 주의 일부였다. 초기 이곳에 이민 온 한인들은 다리만 건너면 DC 시내이니 많이 북버지니아 지역에 이주하기 시작했다.
지난 20년 동안 북버지니아 한인회는 직업교육학교인 한사랑학교를 개설, 인기가 상승했다. 나도 냉난방 교육 후 자격증을 취득했다. 고맙게 생각한다.
통합을 위한 첫 단추는 전직 회장들의 진솔한 대화이다.
둘째는 먼저 생긴 한인연합회의 현재 능력과 비교할 때 나중 생긴 북버지니아 한인회의 위상이다. 즉 재정상태, 훼어팩스 카운티의 정부보조금, 행사일정, 회의참석인원 등도 연합회보다 나을 수 있다.
회장 선출 방법과 업무 분담이 핵심과제다. 현재 어느 향우회와 같이 회장 선출위원회를 회칙에 넣고 한쪽에서 5명(고문, 자문, 이사, 회장단)씩 추천, 10명 위원이 모여 위원장을 뽑는 방안을 제안한다. 이후 자천 타천으로 회장 희망자를 접수한다. 최고 득표자는 회장, 차점자는 수석 부회장이 되고, 수석 부회장이 북버지니아 한인회 운영 전반을 담당한다. 매년 말 감사를 마친 회계보고서를 한인회에 제출, 이사회 인준을 받도록 명시한다. 회장은 부회장이 맡은 업무를 제외한 북버지니아 지역의 봉사업무, 대외업무, DC 전 지역의 한인 상인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힘쓰게 한다.
왜 버지니아에는 한인회가 2개 있느냐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연합회는 뭐 하는 단체냐는 질문도 자주 받는다. 작년 카트리나 의연금으로 이곳 종교단체에서 헌금된 액수가 4만여 불이었다. 우리 한국사람은 정이 많다. 통합되어 열심히 일하고 봉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동포들의 회비, 십시일반의 지원, 능력 있는 분들의 기부금들이 답지하리라고 믿는다.
정상대 <워싱턴 한인연합회 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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