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도 바쁘고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어느덧 해를 넘기는 문턱에 서게 되었다. 한 해를 되돌아보니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그 보다는 감사한 일이 더 많았음을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 제일 감사한 것은 일하는 엄마 밑에서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준 것이다.
7세난 둘째에게 엄마가 널 사랑한다는 걸 어떻게 아느냐고 묻자 예전에는 뭘 많이 사줘서 안다고 하던 아이가 “I know it in my heart”(그냥 마음으로 알아요)라고 천연덕스럽게 답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들이 부쩍 컸음을 느끼고 눈물이 핑 돌았다.
아이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것은 일하는 엄마의 피치 못할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학교 행사가 있어도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며 “엄마 못 오지? 안 와도 돼” 하면서 속으로는 엄마가 와 주길 바란다. 그래서 참석하려고 노력하지만 못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스케줄을 이리 저리 맞추어 일도 보고 아이의 행사에 맞춰가느라 허둥대다 보면 일은 일대로 제대로 못하고 막상 학교에 가더라도 아이의 순서는 끝나버려 허탕을 친 적도 있고, 교통체증에 걸려 오도가도 못한 채 엄마를 기다릴 아이를 생각하며 저며오는 가슴을 쓸어 내린 적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새해를 앞두고 바라기는 아이들이 크면서 일하는 엄마를 이해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해 주고, 본인들도 자립심을 키워갈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큰 아들은 벌써 10세가 되었다. 아이는 4세 때 자폐 진단을 받았다. 처음에는 불치라는 자폐 진단에 너무도 큰 좌절감과 무력함을 느꼈지만, 이제는 나날이 좋아지는 모습을 보며 기도의 끈을 놓지 않게 해주는 축복이 되었다.
아들을 키우면서 다른 자폐아 부모들에게 조언과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를 자주 갖게 되었다. 최근 부모의 극진한 사랑과 희생으로 자폐를 극복하고 마라톤 선수가 된 배형진군이나 수영선수 김진우군의 이야기는 많은 부모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에는 아이의 자폐를 감춘 채 아이를 방치해 두는 부모나 자폐증을 가진 사람들을 편견의 눈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다.
자폐아를 둔 부모들이 극복해야 하는 또 다른 아픔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런 저런 방법을 취해 보는 자신들에 대한 주변의 반응이다. 불치라는데 왜 애를 밖으로 내세워 집안 망신을 시키느냐는 등의 언어 폭력은 자폐아 부모들이 아니면 느껴 보지 못할 아픔이다.
자폐는 다른 장애와는 달리 언뜻 보기에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일반인들과 다른 점을 쉽게 찾기 힘들다.
이 때문에 아이 버릇이 너무 없으니 교육 좀 제대로 시키라고 항의 겸 훈계를 하는 분도 있었고, 일하느라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는 엄마 취급을 하며 빈정거리는 말을 들은 적도 있었다.
회사와 집안 일을 동시에 하느라 제대로 돌 봐주지도 못했던 것 같은데 이젠 엄마의 마음을 살필 줄 알 정도로 잘 자라준 아이들, 회사 일로 늦은 시간 귀가와 잦은 출장으로 아내 노릇 한번 제대로 못해준 것 같은데 불평 없이 성원해 주는 든든한 남편, 아내를 먼저 보내고 어머니 역할까지 같이 해주시는 고마운 친정 아버지, 부족한 점이 많은데도 늘 며느리 자랑이 그칠 날이 없으신 시부모님.
이 모든 가족간의 사랑이 희망차고 행복한 새 해를 위해 우리 가족이 잊지 말고 복용해 야 할 묘약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강소아
텐 커뮤니케이션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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