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발생했던 쓰나미에 인도는 1만 5천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들의 시신처리는 불가촉천민 즉 인도어로 Dalit, 영어로는 Untouchable들의 몫이었다. 10억 인구의 20% 정도를 차지하는 이들이 24시간 쉬지 않고 시신처리 작업을 해서 받은 보수는 식사 포함해서 하루 겨우 50센트.
1947년 법으로 금지되었지만 인도에는 여전히 카스트 제도가 존재하고 있다. Brahman(승려), Kshatriya(왕족이나 군인), Vaishya(상인), Sudra(농민)등 4 계층과 그 밑에 Dalit가 있다. 아무리 똑똑하고 학식이 높더라로 계층을 뛰어 넘는 것은 거의 원천적으로 봉쇄되어져 있다.
우리나라도 분명한 계층사회였었다. 반상의 구분이 명확하여 양반이 아닌 경우 계층상승의 기회는 전무했었다. 그러다 일제 식민시대와 미 군정을 거치며 오랫동안 군림했던 계층이 급작스럽게 무너졌다. 유전자처럼 대물림되던 부모들의 빈부귀천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이다.
이러한 신분상승 노력에서 가장 손쉽고 빠른 방법은 자녀들의 국가고시 합격이었다. 의사나 법조인이 되는 시험에만 합격하면 돈과 명예를 한꺼번에 누리게 되었다. 시험 하나로 인생역전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헐벗고 굶주려도 자녀교육에 모든 것을 바치게 된다. 너도나도 자식교육, 아니 엄밀히 말해서 자식들의 국가고시 준비에 인생을 걸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녀들의 행복은 뒤로 제쳐질 수밖에 없었고 그들의 선호도와는 전혀 관계없이 가야만 할 대학과 전공이 이미 부모들에 의해서 정해지는 경우들이 다반사처럼 되어 버렸다. 필사적인 부모들 때문에 아이들은 가족들의 운명을 책임지고 있다고 느끼며 시험준비에 매달리게 된다. 교육의 정의나 목적에 대한 교육철학자들의 논쟁은 한국사회에서는 공허한 다툼일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살인적인 경쟁 속에서 꿈 많은 10대를 보냈던 아이들이 명성과 돈을 얻고 난 뒤 문득 인생을 되돌아보면 자기 인생은 시험준비 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몸도 마음도 대혼란 속에 빠져들게 된다. 빈부귀천에 상관없이 자식들의 교육에 인생을 걸었던 부모들이 이 때 내뱉는 한탄조의 말이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다.
미국에 와서 까지 한풀이식 교육에 매달리는 몇몇 한인 동포들의 맹목적인 자식교육열을 보면 안타깝다. 한국처럼 학벌이 곧 자녀들의 부와 명예를 자동적으로 보장해 주지 않음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폴란드 역사 전문가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Dr. Knoll의 말이 자꾸만 생각난다. 자기 밑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려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대학원생들을 보면 안쓰러운 생각만이 든다는 것이다. 순수 인문계 박사학위가 이 미국 땅에서 부나 사회적 지위의 격상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Berkeley대학에서 인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전기수리공으로 전봇대를 타고 다니는 백인 여성도 개인적으로 알고 있다. 공부 그 자체가 좋아서 하는 것이지 세속적인 성공을 위한 투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땅에는 시험 하나로 인생이 뒤바뀌는 경우는 거의 없다. 평범해 보이지만 주어진 여건에서 자신의 모든 노력을 경주하여 주어진 잠재력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먼 훗날 대접받을 수 있는 사회다. 자녀들의 개성이나 특성에 걸맞는 교육을 같이 찿아 보며 그들의 능력에 대한 정확한 판단으로 최선을 다하며 성장 발달할 수 있도록 인정과 격려하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자식들이 삶에 대한 애착과 의욕을 가지며 그들 나름대로의 최선의 인생을 설계하는데 동반자 내지는 협력자로서의 역할에 만족해야 한다. 자식들의 행복한 인생까지도 부모들이 책임질 수는 없다.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자생력과 경쟁력을 가진 자녀들로 키워야 한다. 내 자식들이 내 인생을 대변할 수는 없으며 더욱이 보상까지는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빨리 받아들여야 한다.
이주헌
<교육심리학 박사·행동수정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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