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노동절 연휴를 앞둔 금요일 오후, 학교 수업이 거의 끝나갈 무렵 두 명의 학생이 연달아 찾아왔다. 너무 뜻밖의 방문이라 처음엔 그들이 학교에 무슨 볼일이 있어서 온 줄 알았다. 그들은 지난 4년간 학교 생활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중간에 자퇴를 하고 나간 학생들이었다.
둘다 살이 쪄서 얼굴은 통통하고 수염이 삐쭉이 나와서 애 어른같아 보였지만 막 젖을 뗀 아이들처럼 한창 젖살이 올라 건강해 보이는 편안한 모습으로 내 앞에 웃으며 인사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먼저 방문한 L은 9학년까지 메그넷 학교에 다니다가 사춘기로 몸살을 앓고있던 중 집과 가까운 우리 학교로 전학온 학생이었다. 그는 사사건건 엄마 하는 일이 맘에 안든다고 불만을 터트리고 공부에 집중할 수 없는 것을 엄마 탓으로 돌리던 철딱서니 없는 학생이었다.
1년동안 가방을 메고 왔다 갔다 시간 낭비하다가 당시 타운의 한 사립학교로 전학을 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군에 가기까지 역시 한참의 세월을 보냈었다.
7개월 전에는 갑자기 전화해서 몇 시간 있다가 멀리 신체 검사를 받으러 떠난다며 가기 전 만나고 싶다고 했었다. 저녁이라도 먹자고 했지만 체중이 기준을 초과해서 3일째 굶고 있다며 커피잔을 든 손을 가볍게 떨기도 했었다. 그후, 그날 신체 검사에 무사히 통과하여 훈련소에 입소했다며 학생의 어머니는 전화로 소식을 전해 주셨었다.
그는 노동절 연휴라 집에 들렀다며 살은 적당히 빠져 피부는 윤기가 돌고 군기는 바짝 들어서 머리는 짧고 단정하게, 엉덩이까지 내려오던 바지는 적당히 허리선까지 올라가고 개구장이 모습의 웃음을 여전히 지으며 농담을 건네는 그의 건강한 모습을 보면서 모범생들의 성공한 모습을 보는 것 이상으로 감격했었다.
엄마가 보내준 햇반과 라면은 좋은데 양말 색깔이 영 맘에 안들고, 책은 두 줄만 읽어도 잠이 오는 책을 보내서 안본다며 툴툴대는 그의 귀여운 모습을 보며 나는 한동안 그의 대견함에 말을 잃었었다. 앞으로 훈련 과정을 끝내고 메릴랜드에 가면 거기서 대학을 다닐거라는 그를 보면서 그의 멀쩡한 지금의 모습이 옆에 있던 어머니 눈가에 늘어난 잔주름을 확 펼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그 뒤를 이어 P라는 학생이 찾아왔다. 그는 당시 학교를 다니다가 말도 없이 자퇴를 하고 난 후 그날 처음 소식을 접한 학생이었다. 그 당시 그는 학교 생활에 재미를 못붙이고 졸업한다고 학교에 버티고있는 것이 고통스러워 자퇴를 하고 친구가 가는 요리 학교에 우연히 따라갔다가 그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고 했다.
이제 1년만 더 다니면 요리사가 된다는 그를 보며 그가 재학 중 자신이 없어 늘 어깨도 펴지 못하고 목소리 큰 선생을 만나면 뒷자리에서 뱅뱅 돌기만 했던 소심했던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학교를 다니면서 불안해하며 자신없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이젠 제법 어른스런 모습으로 자신의 앞길을 잘도 헤쳐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학교를 떠나며 인사도 못하고 가서 늘 마음에 걸렸다며 연휴를 맞아 편한 마음으로 나를 보고 싶어 왔다는 그의 등을 쓰다듬어 주면서 그의 대견한 모습에 나는 그날 두 번째 감격을 했다. 그는 앞으로 1년을 더 마치고 고등학교 때는 놀기만 했으니 대학에서라도 공부를 해보고 싶다며 교환 학생으로 프랑스에 유학을 가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한인타운에서 부모가 먹고사느라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 뒷전에 물러선 그들의 학교 생활이 지옥같을 수밖에 없어 힘들었던 고교 시절을 뒤로하고 이제는 어엿한 자신들만의 세계로 접어든 그들을 보며 나는 기쁨과 동시에 씁쓸함을 느꼈다.
이제는 의젓한 청년이 되어 돌아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한 이민 가정의 자녀로서 초라해진 이민 1세를 등에 업고 큰 누님 같은 모습으로 돌아와 타운의 목소리 큰 사람이 되기보다는 부지런한 손과 발이 되어 주길 기대한다.
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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