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수(맨하탄)
채널 17 TV가 이상하게 탈바꿈을 했다. 어느날 갑자기 ‘재정적으로 운영이 어려워 ‘리스’를 주기로 했다’는 짤막한 자막이 두 세번 나오더니 오색꽃으로 뒤덮힌 무대같은 단상에서 가무가 난무한 가운데 예수 찬양을 외치는 함성만 터져나오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채널 17의 프로그램과 생활을 같이 해 왔다. 재미라고는 별로 없는 이 미국생활에서 채널 17이 보내주던 고국의 TV 프로그램들은 우리들 하루 생활의 유일한 낙이요, 우리에게 한국인임을 깨우쳐 주던 이웃같은 친구였다.밖에서 돌아오면 신발도 벗기 전에 TV 스위치를 켰고 아내는 한 프로그램이라도 더 보겠다고 고단한데도 밤 12시까지 TV 앞을 떠나지 않았었다. 그러나 최근 난데없이 엉뚱한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속된 말로 하자면 사업을 해보니 이익은 커녕 계속 돈이 찔러 들어가는 판국이라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됐다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우리는 전에 보던 정규방송이 끊어진 다음 날, 또 다음 날도 예전같이 TV를 켜놓고 돌아오지 않는 자식을 기다리는 사람 모양 TV 앞을 지키고 있다.이제 생각하니 방송국을 운영하는 사람, 그리고 그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보다 나은 내용의 프로그램을 보내주려고 애를 써온 방송인들에 대한 고마움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 같다. 말도 못하고 얼마나 어려웠으면 방송을 끊기까지 했을까?
늦게나마 감사를 드리고 오히려 그 분들을 위로해 주고 싶다.그러면서도 한 두가지는 큰 아쉬움으로 남고 있다. 방송을 끊기 전에 사주가, 아니면 본부장 정도라도 화면을 통해 짤막하게 나마 사정을 자세히 알려주고 시청자들에게 양해를 구할 수는 없었을까? “내 방송 내가 끊는데 뭐 어때” 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방송은 사회 공기라고도 한다. 어떤 사람이 세탁소를 하다가 남에게 넘기는 것 하고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동안 방송을 통해 생활 지식을 넓히고 삶의 보람을 찾던 그 많은 시청자들의 허전하고 서운한 마음은 조금이라도 이해해 줄 수는 없었을까?
그 날은 마침 같은 계열사로 알려진 AM 1660 라디오에서 태풍피해지역 이재민을 돕기 위한 구호금 모금 생방송이 하루종일 진행됐다. 생방송이 진행되는 동안 적지않은 사람들이 ‘채널 17이 왜 안 나오느냐’고 물어댔고 그 때마다 진행자는 ‘다른 번호의 전화로 물으라’고 퉁명스럽게 말을 잘랐다.
그 진행자는 바로 ‘시사 인터뷰’나 ‘시사논평’을 해오던 동포사회에 잘 알려진 중견급 언론인이었다. 이 사람이 정말 방송의사명이나 방송인의 본분에 대해서 알고 지금까지 떠들어 댔을까? 한국 속담에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TV 프로그램 안 나오면 비디오 빌려다 보고 뉴스
가 궁금하면 인터넷 보면 된다. 몇일 안 지나서 우리는 또 채널 17 없는 생활에 익숙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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