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의 치트완 국립 공원에서 더위와 모기에게 온몸을 내맡긴 채 씨름을 하고 있다. 햇볕에 노출된 부분은 모두 그을려 코끼리 등처럼 쪼글쪼글해진 손등이며 까맣게 타버린 그들의 삶을 마주하면서 네팔에서 2주간의 여행을 마무리하려 한다.
내일이면 카투만두로 돌아가 방콕을 거쳐 서울에 들러 오빠와 올케언니랑 백두대간중 설악권 일부를 들러볼 계획을 세워놓았다. 긴 여행 끝엔 언제나 김치가 그리워지는 것처럼 한국의 산줄기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과거 한국의 산야가 벌거숭이 민둥산이란 오명을 벗고 정부의 적극적인 산림정책과 국민생활 수준의 향상으로 삶의 질을 추구함에 따라 산천이 푸르게 뒤덮이고 있다는 소식에 그 땅을 밟아보고 싶었다.
네팔에서의 마지막날 아침, 정글 산책을 하고 오는 길에 가이드와 한국 기독교재단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에 들렀다. 문을 밀고 들어가니 눈이 새까만 올망졸망한 네팔의 어린이들이 쪼르륵 몰려와 내 손을 잡아보고 쳐다보며 어쩔 줄 몰라한다. 이 어린이들은 정치적 이유가 아닌 순전히 가난으로 인한 고아들이다. 인도에서 자원봉사 온 젊은 남자 선생은 CD 플레이어의 이어폰을 귀에 꽂고 흔들며 서있는 모습이 아이들과 다를 바 없다.
한국 직원을 만나볼까 하는 기대를 했지만 끝내 보이질 않는다. 가끔 들르는 관광객들의 순간적인 도움보다는 모양새 있는 도움, 즉 시설 보수나 아이들에게 필요한 생필품 등을 사줌으로써 고아들이 장기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간접 방법을 택한다고 가이드는 전한다.
저녁에 찬물로 샤워를 하고 그들의 전통 음식인 ‘달밧’을 대하니 밥알이 살살 녹는다. 직원 중 한 명이 그 근처에 살고 있어 자기 집 소젖을 직접 짜 요구르트를 만들었다는데 맛이 익숙하진 않았지만 살아있는 깊은 맛이 있다. 자연의 맛이다.
저 멀리 고아원에서 아침해가 뜨는 걸 보며 카투만두로 떠날 준비를 했다. 죽 늘어선 호텔 직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가이드가 태워주는 버스에 올라타니 반 이상은 유럽에서 온 배낭족이다. 자유 분방한 유럽의 젊은이들이 신비한 동양의 문화를 접하며 어떤 꿈을 꿀까. 그들은 이 나라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 지 궁금하다.
오후 2시에 도착하리란 예상을 보기 좋게 뒤엎고 밤 9시가 넘어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무장한 마오이스트들을 한 명씩 검문하느라 산길에서 그야말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땡볕에 냄새 나는 찜통 차안에서 피할 수 없는 더위와 싸우느라 나는 더 없는 마음 수행을 했는데, 네팔리들은 그들의 삶 자체가 수행이자 고행이다. 상식과 비상식 모두 통하는 네팔리, 어쩌면 이것이 히말라야와 더불어 내가 본 가장 그들다운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풍부한 문화유산과 넘쳐흐르는 천연자원을 지천에 두고도 정치 부패와 기후 앞에 무기력해지는 네팔리들을 보며 한국 사람들의 부지런함과 맨주먹 정신을 생각해 본다. 만약, 이들이 이런 상태로 네팔의 관광자원과 천연자원을 방치해 둔다면 머지않아 그것마저도 지키기 힘들게 될 것이다. 과감한 정부 주도의 정책과 적극적인 외국자본 유치 그리고 젊은 네팔리들의 나라 사랑이 20대의 젊고 탱탱한 네팔의 자원을 적극 활용해 과거 한국이 이룩한 경제 발전을 이뤄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피멍든 발톱이 서서히 하얗게 회복돼 가며 두 달 전의 진한 기억이 물러가고 있다. 일상으로 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내 자리에 익숙해져 간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세상살이의 간격에 애쓰며 살았던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며 사회 속에서 내 자리를 점검하고 그 속에서 나의 역할을 끊임없이 찾는 것, 그것이 어떤 일이든 그것은 내가 죽을 때까지 해야 할 일이다. 이번 방학은 네팔리들에게 내 마음을 홀딱 빼앗긴 채로 잠자고 있는 내 안의 히말라야를 흔들어가며 그 맛에 탐닉하고 음미하고, 그렇게 여름의 반을 보냈다. <끝>
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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