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시티=연합뉴스) 김영섭 특파원 = 미국-남미 좌파 지지 후보간 격돌로 관심을 모았던 미주개발은행(IDB) 차기 총재 투표에서 미국의 중남미 최대 맹방인 콜롬비아 고위 외교관이 선출됐다.
미국은 지난 5월초 외교안보협의체 미주기구(OAS) 사무총장 선거에서 남미권 좌파동맹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석 달도 채 안돼 미국은 IDB 총재선거에서 오래 전부터 낙점한 루이스 알베르토 모레노(52) 주미 콜롬비아대사를 1차 투표만으로 당선을 확정시키는 위력을 발휘, 여전히 중남미의 `돈줄’을 틀어쥐고 있음을 과시했다.
27일 워싱턴 IDB 본부에서 열린 투표에는 브라질 기획장관을 역임한 주앙 사야드 IDB 재정.행정담당 부총재가 남미 좌파의 대표로 나서 표 결집에 나섰다.
그러나 세계 최대 지역개발금융기구인 IDB의 자본금 지분이 30%에 달하는 미국의 절대적 영향력을 실감할 수 밖에 없었다.
미국과 극도로 대립해 온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베네수엘라는 알레한드로 로하스 전(前) 재무장관을 출마시켜 미국의 지지를 받는 콜롬비아 후보의 바람을 차단하려 했으나 오히려 표의 분산만 가져왔다.
게다가 로하스 전 장관은 투표 전 출마를 포기했다고 스페인 EFE통신이 IDB 소식통들을 인용했다.
모레노 대사는 이날 미주 28개 국 가운데 20개 국, IDB 주주들의 60% 이상 지지를 이끌어냄으로써 1차 투표에서 승리를 확정지었다.
지난 봄 OAS 사무총장 선거에서는 미국이 지지한 멕시코 후보와 남미 좌파의 칠레 후보가 다섯 번 투표에서 모두 무승부를 기록했고, 결국 멕시코측 후보가 사퇴하면서 남미 좌파의 승리로 끝났었다.
모레노 대사는 당선 뒤 콜롬비아 RCN 라디오와 회견에서 카리브해, 중미권을 비롯해 우루과이,파라과이,에콰도르 등 남미권 그리고 북미, 유럽, 아시아권 국가들의 지지를 받았다고 말했다. 반대표를 던진 8개국은 브라질,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등 남미좌파 중심 세력으로 구성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이와 관련해 총재 선출뒤 얼마 안 돼 불거진 차베스 대통령의 돌연 행동이 관심을 끈다.
28일 파나마에서 개막될 카리브 정상회담에 참석할 예정이던 그는 아무런 이유없이 회담 참석을 취소한다고 밝혔다고 베네수엘라 외무부 대변인이 전했다.
이번 정상회담은 카리브국가협의회 소속 25개국이 주도한다. 따라서 차베스 대통령이 IDB 총재선거에서 미국편에 선 카리브 국가들에 대해 유감을 표하기 위해 특유의 돌출행동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차베스 대통령은 카리브공동체 국가들과 베네수엘라산 석유를 염가에 공급한다는 역내 에너지 협정(페트로카리브)을 맺은 바 있다. 결과적으로 차베스로서는 석유를 바탕으로 한 경제적 영향력이 미국에 의해 가로막히는 상황에 직면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꾸로 OAS에서 손상된 자존심을 단숨에 회복한 미국의 자신감은 마침 이날 콜롬비아를 방문한 니컬러스 번스 국무부 정무담당 차관의 입을 통해 표출됐다.
번스 차관은 보고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베네수엘라 주도의 남미권 위성방송 `텔레수르’ 출범에 대해 베네수엘라를 ‘우주의 중심’으로 보지 않는다고 평가절하한 뒤 우리는 차베스가 하고 있는지 안하고 있는지 모를 문제로 밤잠을 설칠 정도로 걱정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모레노 총재 당선자는 1998년부터 주미 콜롬비아대사를 역임하며 콜롬비아 마약퇴치.반군척결을 위한 40억 달러의 미국 예산 지원을 이끌어내 주역이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난 그는 워싱턴 외교가에서 신망을 쌓는데 성공했으나 중남미 경제와 관련된 IDB 총재직을 원만히 수행할 지는 미지수로 남아 있다고 중남미 외교소식통들은 전했다.
kimy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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