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 할머니가 자기가 죽으면 화장을 해서 동네 쇼핑센터 입구 화단에 뿌려달라고 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궁금해서 이유를 물으니 ‘하나밖에 없는 딸이 자기가 멀리 장지에 묻히면 1년에 한 번 보러오기도 힘들겠지만 쇼핑센터의 화단에 있으면 적어도 한 주에 한번쯤은 딸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했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이 할머니의 딸뿐만 아니라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쇼핑센터를 즐겨 찾는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원래 여자들은 날 때부터 아름다운 것, 귀한 것을 즐기며 좋아하고, 이런 많은 좋은 물건들이 있는 쇼핑센터는 여자아이들에게는 동경의 장소이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가 살다보면 가끔 예기치 않은 스트레스나 그 나름대로의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로 힘들고 버거워서 어딘가로 뛰쳐나가고 싶지만, 친구도 친척도 모두 바쁘고 내 이야기를 들어줄 만큼 여유가 있는 사람이 주위에 없을 때가 많다. 지금은 바빠서 자주 가지 못하지만 나는 힘든 초기 이민생활에서 가금 쇼핑센터에 가서 아픈 머리를 식히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여유있게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다 가끔 아이들과 남편에 대한 불평도 혼자 중얼거리고, 가까이 없는 엄마나 친구들도 원망해 보았었다. 그곳에서 딱히 살 물건이 없어도 한바퀴 돌면서 세일하는 양말 한 켤레라도 사들고 오면 마음은 어느새 밝아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 달려가도 왜 왔냐고, 또 무슨 일이 있냐고 따지고 묻는 사람도, 네가 잘못했다고 야단을 치는 이도 없는 곳이 이 곳이다. 나는 갑자기 자유의 영역에 들어온 듯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된다. 같은 가게를 몇 번인가 들락거리고, 같은 물건을 몇 번이라도 들여다보면서 남자들이 이해 못해도 우리는 지금 스트레스 푸는 연습을 하고 있다고 중얼거린다. 언제인가 친구들 얘기가 쇼핑센터에 가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한 시간에 120불씩 내야하는 정신과 의사를 보러 가는 것보다 훨씬 싸고 경제적이라고 해서 한바탕 웃은 적이 있다.
혼자 살아도 둘이 살아도 외롭다는 인생, 순하던 여인의 눈동자에 막막함과 노여움은 눈물이 되어 지나가고, 두 어깨는 전쟁에 지고 돌아온 패잔병처럼 축 처져 있을 때 그녀를 다시 밝고 희망적인 미소로 돌려놓고 “세상일이 그럴 수도 있지”하면서 돌아오는 것을 함께 도와주는 곳도 쇼핑센터이다.
남편도 아이들도 절대 풀 수 없는 모퉁이의 스트레스와 가슴속 서늘한 공허의 정체를 여인들은 세일하는 딸아이의 예쁜 드레스 하나를 싸게 사들고 마치 공짜로 얻은 듯 좋아하며 쇼핑센터에서 풀어가기도 한답니다. 그래서 쇼핑센터는 여인들에게 물건을 사는 곳 이상의, 친구이고, 피신처의 의미를 부여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혜란/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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