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13살짜리 작고 찢어지게 가난한 소년이었던 시절 학교에서 그를 몹시 괴롭히던 깡패가 있었다. 그의 행패에 견디다 못한 노무현 소년은 어느 날 친구 2명과 힘을 합쳐 그를 때려 눕혔다. 노무현보다 체구가 훨씬 큰 깡패도 셋이 달려드는 데는 견디지 못했다. 그 날 이후로 그는 노무현을 다시는 건드리지 못했다.
비슷한 무렵 학교 선생이 이승만의 업적을 찬양하는 작문을 쓰게 했다. 노무현은 “학생들에게 부정 선거를 지지하는 글을 강제로 쓰게 해서는 안 된다”며 이를 끝내 거부했다. 이 일로 그는 결국 정학을 당했다. 노무현의 지지자를 규합하는 재주와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소신을 꺾지 않는 고집은 어려서부터 싹을 피웠던 모양이다.
고학으로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 돈을 좀 벌게 되자 그는 그 돈을 술과 여자, 요트에 탕진했다. 아내가 이에 반대하자 구타도 서슴지 않았다. 그가 정신을 차린 것은 1983년 전두환 정권에 고문당한 학생들 변호를 맡으면서부터였다. 인권 변호사로 다시 태어난 그는 ‘못 가진 자’의 기대를 한 몸에 업고 2002년 대선에서 승리, 마침내 청와대에 입성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생은 “아무리 미천한 출신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점에서는 한국 사회의 진일보지만 계층간의 갈등을 악화시켰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그 원인의 하나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입은 노무현의 콤플렉스를 들고 있다.
17일 선거에서 133년 만에 처음 라티노로 LA 시장에 당선된 안토니오 비아라이고사는 노무현 대통령과 닮은 점이 많다. 멕시코 출신 푸주간 점원을 아버지로 이스트 LA의 빈민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폭행하는 것을 지켜보며 자랐다. 그나마 그 아버지는 그가 5살 때 집을 나가 그를 돌보지 않았다. 그는 지금도 그 때 어머니의 울부짖는 소리가 생생히 들린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의 학교 생활은 엉망이었다. 본인은 갱단 싸움의 조정자였지 갱 단원은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어쨌든 폭력 사건에 연루돼 퇴학당했다. 고학으로 UCLA와 피플스 칼리지 법대에 입학하기는 했지만 20대에 두 명의 여성에게서 각각 사생아를 낳을 정도로 사생활은 엉망이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개과천선해 노조 지도자로 변신한다. 그 후 그는 뛰어난 협상력과 친화력, 세 결집력을 바탕으로 주 하원의원에서 시작, 주 하원 의장, LA 시의원을 거쳐 미 제2의 도시 LA의 사실상 첫 라티노 시장이 된 것이다. 벌써부터 차기 가주 지사는 물론이고 잠재적 대선 후보로까지 점쳐 지고 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은 자기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이 때 입은 상처는 두고두고 후유증을 남기기도 한다. ‘이 시대의 가장 뛰어난 정치적 능력을 지닌 인물’로 평가받는 클린턴이 공직 생활 내내 끊임없는 엽색 스캔들에 시달린 것도 유복자로 알콜 중독자 의부 밑에서 자라며 안정적인 가정 생활을 하지 못한 탓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과연 비아라이고사가 어린 시절의 악몽을 극복하고 바른 정치를 펼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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