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대에 혜통이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그가 출가하게된 배경에는 가슴 섬뜩한 전설이 있다. 삼국유사 제5권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어느 날 그가 산기슭의 집 근처 시내에서 놀다가 수달 한 마리를 잡아 삶아 먹고 그 뼈를 동산에 버렸다. 그런데 이튿날 새벽에 나가 보니 뼈는 모두 없어지고 핏자국만 남아 있었다. 이상하게 여긴 그가 핏자국을 따라 가보니 기이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뼈가 전에 살던 굴로 돌아가 새끼 다섯 마리를 껴안고 있는 것이었다. 충격을 받은 그는 거기서 깨달음을 얻어 속세를 버리고 중이 되었다고 한다.
혜통은 그저 짐승 한 마리를 잡아먹은 것이었지만, 뼈로 새끼들을 안고 있을 때 그 존재는 더 이상 단순한 짐승이 아니다. 갓난 새끼에 대한 보호 본능이 죽음도 가로막지 못할 만큼 절절한 존재 - 바로 이 세상의 어미이고, 모성애의 화신이다.
불경은 “목숨이 있는 동안은 자식의 몸을 대신하기를 바라고 죽은 뒤에는 자식의 몸을 지키려는 것”을 어머니의 마음이라고 설명한다. 동물도 예외가 아니다. 자식 사랑은 이 세상 모든 생명체의 본능이다.
어머니날을 앞두고 신문사에는 어머니를 기리는 글들이 많이 들어왔다. 대부분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글들이었다. 어머니가 살아 계시면 꽃이나 선물로 감사를 표시할 수 있겠지만, 이미 이 세상에 안 계시니 글로 밖에는 그리움을 표현할 길이 없는 탓인 것 같다.
‘어머니’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은 ‘따뜻함’이다. ‘나’라는 존재를 따뜻하게 품어 안아 이 세상에 홀로 발 딛고 설 수 있도록 길러준 분, 차가운 현실 속에서 따뜻한 보호막이 되느라 온갖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분, 그래서 삶이 춥고 스산할 때마다 생각나는 분이 어머니이다. 우리 모두는 어머니에게 존재의 빚을 진 자들이다.
그런데 이와는 별도로 어머니날을 맞아 여성들은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어머니로서 자신의 모습이다. 간단히 말하면 “나는 몇 점 짜리 엄마일까” 하는 문제이다.
지난 연말 한국의 백기완 통일문제 연구소장이 어린이 이야기책을 준비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평생 ‘혁명’이나 ‘운동’같은 단어와 어울리던 그가 일흔이 넘은 나이에 동화책을 쓰는 이유는 “요즘 어머니들 자녀교육이 너무 못마땅해서”라고 했다. “내 자식 출세시키고 돈 많이 벌고 권력 얻게 만드는 데”만 전력을 기울이는 요즘 어머니들의 ‘희생’혹은 ‘모성애’는 올바른 사랑이 아니라고 그는 지적 했다.
그가 이야기책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어머니 상을 그릴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자녀를 키우는 여성들이 스스로 ‘내가 엄마로서 잘 하고 있나’ 짚어볼 필요는 있다.
모성애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다고 본다. 본능적 차원과 이성적 차원 이다.
본능적 차원이란 생명체라면 으레 갖는 모성본능이다. 아무리 이기적이던 여성도 일단 엄마가 되고 나면 자식을 위해 헌신을 하느라 180도 바뀌는 모습은 사실 경이롭다. 출산 때 분비되는 호르몬이 모성 본능을 발동시키는 결과라고 한다.
이성적 차원의 모성애는 자식이 바르게 자라도록 가치관을 심어주고 방향을 잡아주는 정신적, 윤리적 차원. 한없이 자애롭다가도 자식이 잘못을 하면 매를 들어 따끔하게 가르치던 엄한 어머니의 모습이다.
무조건 감싸 안고 싶은 본능적 모성애, 훌륭한 재목으로 만들기 위해 자르고 깎기를 마다 않는 이성적 모성애가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엄마는 만점짜리가 될 것이다.
사회가 혼탁한 것은 근본을 짚어 보면 너무 지나친 모성애, 혹은 너무 부족한 모성애가 원인일 수 있다. 어머니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들이 종종 냉혹한 범죄의 주인공이 되고, 모성애가 지나치면 자녀가 어른이 되어서도 정신적 미숙아로 남아 두고두고 문제가 된다.
우리가 키우는 자녀들이 장차 이 사회의 주인공이 된다는 사실은 가볍지 않다. 우리가 자녀를 바로 키워야 바른 사회가 된다.
권정희 논설위원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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