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비히비(Ubehebe). 죽음의 계곡으로 불리는 데스밸리에 있는 직경 0.5마일, 깊이 500피트의 분화구다. 인디언들이 분화구가 하도 크고 깊이 패어 큰 바구니 또는 큰 접시를 뜻하는 우비히비로 이름지었다. 수천년 전 마그마를 쏟아냈을 이 화산은 당시 가공할 파괴력 때문에 산 자체가 흔적을 잃고 움푹 들어간 거대한 구덩이로 탈바꿈했다.
우비히비 내벽은 부분적으로 시꺼먼 색을 띠어 당시 자연의 격렬한 용트림을 떠올린다. 분출하는 마그마와 지하수가 만나 증기를 분출하면서 폭발해 인근 6스퀘어마일을 화산재로 뒤덮었다. 바닥에 내려가 주위를 빙그레 올려다보면 영락없이 ‘창살 없는 감방’이다.
우비히비에는 물이 없어 생명의 터전이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쩍쩍 갈라진 바닥은 잘못 디디면 천길 지하로 함몰될 것 같아 당장 빠져나가고 싶어진다. ‘나락’에 서 있다는 절박함을 안긴다.
그런데 거북이등처럼 갈라지고 메마른 땅에서 개미 한 마리가 움직인다. 보통 개미보다 몸집이 크고 살도 통통히 쪄 보였다. 탈출해야 할 이 곳이 개미에겐 소중한 보금자리다. 사람과 개미를 견주는데 무리가 따른다고 할 수 있지만, 우비히비는 한 생명에게는 절망의 황무지인데 반해 다른 생명에게는 감사의 ‘옥토’다.
사람이라도 동일한 처지에서 누구는 절망하고 누구는 감사한다. 가진 것은 없지만 항상 감사하는 한국의 한 가정이 있다. 1997년 어느 날, 세 식구 끼니를 때우기 위해 라면 2개를 살 돈도 없을 정도였다. 봉사단체의 도움으로 입에 풀칠을 하고 아이들 교육도 간신히 꾸려갔지만 여전히 힘에 부쳤다. 그래도 기쁜 마음을 잃지 않았다.
아이들은 모두 우등생이었지만 형편을 고려해 국립이나 공립 학교를 택했다. 큰 아이는 국립의료원 간호대학에 들어갔다. 고교 3학년인 작은아이는 국군간호사관학교를 지원할 작정이다. 실력대로라면 얼마든지 명문 사립대학을 두드릴 수 있지만 경제사정을 비관하지 않고 주어진 상황에 감사하며 차선을 택했다.
두 아이는 각각 한 달에 1만원을 용돈으로 탄다. 버스카드는 어머니가 따로 주지만 요즘 물가에 1만원으로 한 달을 버틴다는 것 자체가 보통 극기훈련이 아니다. 그런데 하루에 다 써도 별 표도 안 날 그 용돈을 아껴 어머니 생일을 잊지 않고 머리핀이나 책을 사 드린다. 용돈이 궁해도 불평하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 선물을 준비하는 자세는 감사의 삶이다.
자식들에게 용돈을 넉넉히 주지 못해 가슴 아파하던 어머니는 자식들이 고생을 고생으로 여기지 않는 심성을 갖게 된 데 감사의 눈물을 흘린다. 이 가정에 작은 도움을 주는 봉사단체를 통해 알려진 이 얘기는, 세속적인 불평 불만이 드세질 연말에 잔잔한 감동을 준다. 남에겐 ‘바닥 인생’일지라도 내겐 ‘감사할 인생’일 수 있음을 가르친다.
<박봉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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