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트라는 고대 페르샤의 태양신이다. 기원전 600년 이란을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한 미트라 교는 기독교가 탄생할 무렵에는 중동은 물론 로마 전역에 세를 떨치고 있었으며 기독교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다.
미트라는 예수와 놀랄 정도로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는 12명의 제자를 뒀으며 ‘선한 목자’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그는 “길이요 진리요 빛”으로 불리웠으며 세례를 주고 빵과 포도주로 성찬을 베풀었다. 그의 추종자들은 천사가 사는 천국과 악마가 사는 지옥, 최후의 심판과 사자의 부활, 말세를 믿고 그를 구세주로 숭배했다.
미트라는 동정녀가 잉태해 태어났으며 동방박사로부터 경배와 선물을 받았다. 그는 죽은 후 무덤에 묻혔다 사흘만에 부활했다. 초기 기독교 교부의 한 사람으로 나중에 마니교를 창시한 마네스는 예수와 미트라는 하나라고 가르치기까지 했다. 그 미트라의 생일이 바로 12월 25일이다.
초기 기독교는 처음 350년 간 크리스마스를 축제일로 인정하지 않았다. 교황 율리우스 1세가 기독교가 공인된 후 로마 군대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미트라 교의 추종 세력을 흡수하기 위해 이를 예수의 탄생일로 선포하면서 크리스마스는 기독교의 명절이 된 것이다.
당시 로마인들은 동짓날을 전후 해 새터날리아라는 축제를 즐겼고 게르만족도 비슷한 시기에 천신 오딘을 섬기는 제사를 지냈으며 바이킹족들은 ‘율’(Yule)이란 축일을 갖고 있었다. 지금도 크리스마스를 ‘율타이드’라고 부르는 것이 여기서 연유한다.
이런 이교도적 요소 때문에 16세기 종교 개혁이 일어나면서 크리스마스는 수세에 몰리게 된다. 독실한 청교도였던 영국의 올리버 크롬웰은 찰스 1세를 죽이고 집권한 후 크리스마스를 폐지했다. 그 전통을 이어받은 미국의 필그림들도 1659년부터 1681까지 보스턴에서 크리스마스를 불법화하고 이를 어긴 사람에게는 무거운 벌금형을 물렸다.
지금은 한 달 전부터 캐롤이 울려 퍼지지만 미 건국 초기만 해도 크리스마스는 별 인기가 없었다. 1789년 연방 헌법이 제정된 후 처음 모인 연방 의회는 12월 25일 평일과 다름없이 집무를 봤다. 미국에서 크리스마스가 공휴일로 지정된 것은 그 후 100년이 지난 1870년부터다.
서양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는 동지를 전후 해 축제를 지내는 곳이 많다. 전기 불이 없던 고대에는 빛과 따뜻함을 주는 태양이야말로 생명과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토록 소중한 해가 떠 있는 날이 점점 짧아지다가 동지를 기점으로 다시 세력을 떨치는 현상은 이들의 마음을 기쁨과 감사로 가득 차게 했으리라. 미트라의 별명은 “꺾이지 않는 태양신”이었다.
세계인의 축제가 된 크리스마스가 요즘 미국에서는 기독교적 행사라는 이유로 공공 건물에서 디스플레이를 철거하라는 소송이 제기되는 등 수난을 당하고 있다. ‘기쁨과 화해의 시즌’을 맞아 그런 일에 정력을 낭비하지 말고 죽음과 부활의 이치를 가르치는 천지자연의 오묘함을 살피는 것이 옳을 듯 하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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