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은 청소년들에게도 방황이 심해지는 시기다. 유혹은 도처에 널려 있는데 부모는 빠듯한 살림 꾸려가느라 자녀 돌보기에 소홀하기 쉽다. 자녀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은 바로 관심과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다. 얼마 전 17세 소년이 사무실 문을 열고 소파에 몸을 던지듯이 털썩 주저앉았다. 엄마가 입을 열었다.
“이 녀석이요 어제 밤에 자살하겠다고 손목을 칼로 그으며 소동을 벌여 하는 수 없이 경찰을 불러 정신병원에 입원을 시켰어요. 오늘 퇴원해도 된다는 연락이 와서 퇴근길에 아이를 데리고 왔어요”라는 것이다. 아이는 주변은 신경도 안 쓰고 “엄마 나 담배 필요해”하고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담배 사러 가자”고 했다.
“너 운동은 무얼 좋아하니?” “농구를 가끔 해요” “그래, 그럼 집에 농구공은 있니?” “없어요” “그러면 담배 사기전에 농구공부터 하나 사주지.” 차를 스포츠 마트로 방향을 돌렸다. 아이는 농구공을 들고는 진지하고 정중한 태도로 “고맙습니다”라고 여러 번했다.
“담배를 어디서 사지. 맥도널드에서도 담배를 파나?” “맥도널드에서는 담배를 안 팔아요. 주유소에서 팔아요.” “가서 차에 개스도 넣고 담배도 사자” “목사님 담배 사지 마세요. 이렇게 좋은 농구공을 사주셨는데 담배까지 얻어 피우면 말이 되나요”했다.
그는 농구공을 끌어안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기는 형제가 없어서 외롭고 엄마가 잔소리가 많고, 등등의 불평과 가정환경에서 성장 배경, 자신의 문제점과 장래 계획까지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놓았다.
그에게 담배 사주려던 돈으로 책을 사 줄 테니 책방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책방에서 아이가 책 하나를 집어들었다. “소년원에 들어갔을 때 아이들이 읽는 것 봤어요. 좋은 책이래요.” 그 책과 톨스토이 단편집 등 다른 책 몇 권을 사들고 나왔다.
어려서 농구를 좋아했었고 농구공을 하나 정도 갖고 싶었는데 아무도 사주지 않았었다고 했다. 스포츠 마트에도, 책방에도 오늘 처음 간 것이었다. 책 선물도 처음이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본 기억이 없다고 했다. 어릴 적에는 방에서 혼자 놀았고, 사춘기 초기부터 마약과 갱에 연관된 친구들의 영향으로 학교에서 쫓겨났다고 했다.
그가 어제 정신병원으로 잡혀간 이유는 엄마와 싸우는 과정에 칼을 들었었다고 했다. 엄마는 911을 불렀고 그는 현장 체포되어 끌려갔는데 경찰들이 말하기를 너는 주 소년원으로 보내질 것이라고 했단다. 주 소년원으로 보내질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공포의 나날을 보내다가 마약에 취해서 자살을 시도했었다고 했다.
그는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엄마 아빠가 한번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장래 계획도 나름대로 세우고 있는 성숙한 소년이었다. 단지 주변에서 아무도 그에게 말로도 물질로도 현실적인 사랑을 표현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말썽꾸러기 문제아로만 구박하고 있었다. 진정으로 그에게 다가서 줄 사람이 없었다.
그는 다른 소년들처럼 소년답게 인정받고 사랑 받고 싶어했다. 그는 갖고 싶은 것 다는 아니어도 최소한의 것이라도 갖고 싶어했다. 그 짧은 시간에나마 더 즐겁고 행복함을 더 많이 느끼도록 해주지 못한 게 아쉬웠고 미안했다.
한번 더 카운슬링 기회가 만들어진다면 이번엔 공원에 가서 농구를 같이 하며 땀흘리는 어우러짐으로 그에게 다가서야겠다고 다짐해 봤다.
김기웅/목사·젊음의 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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