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반의 회사원 P씨가 한국에서 S대학에 재학 중이던 때였다. 80년대 초 어느 날 낯선 남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누구누구의 소개로 전화번호를 알았는데, 만나서 할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었다.
굳이 안 만나겠다고 할 이유도 없어 그는 집 근처 다방에서 그 남자를 만났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하얀 잠바 차림의 20대 남성이 말을 꺼내느라 꽤나 뜸을 들이던 분위기. 이야기인즉 “동생이 대입 예비고사를 봐야 하는데 대신 좀 봐줄 수 없겠느냐. 사례는 섭섭하지 않게 하겠다. (대리 시험 보는 것) 간단하다”
상상도 못한 제의에 당황한 대학생 P군은 “그런 일 할 수 없다. 사실은 나 별로 실력도 없다”는 말로 서둘러 그 자리를 빠져 나왔다고 한다.“나 같은 사람에게도 마수가 뻗쳐 올 정도였다면 그 당시에도 그런 일이 꽤 있었던 모양이다”고 P씨는 회상한다.
대입 수능시험에 휴대전화를 이용한 대규모 커닝사건이 터져 한국이 뒤숭숭하다. 커닝이 새로운 일은 아니다. 시험의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것이 커닝이다. 내가 가담한 커닝이거나 친구들이 행한 커닝이거나, 커닝 한 두건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커닝 방법도 세대에 따라 다르다.
우선 50대 이후 세대가 기억하는 커닝은 가장 고전적인 형태. 책상 밑에 책 숨겨놓고 보기, 커닝 페이퍼를 만들거나 손바닥에 요점 정리 해놓기, 그리고 옆 사람 시험지 넘겨보거나 보여주기 정도. 조그만 종이에 좁쌀 만한 글씨로 커닝 페이퍼를 정성껏 만들다 보니 그 자체로 시험공부가 되더라는 사람도 있다.
40대 전후 세대는 앞사람의 등을 찔러 답을 얻어내던 기억이 있다. 3번 문제의 답을 알고 싶으면 손가락으로 3번, 15번 문제는 주먹으로 한번 손가락으로 5번 찌르는 식이다. 그러면 앞사람이 손가락 신호로 몰래 답을 가르쳐 주거나, 쪽지에 써서 넘겼다.
30대 중반 세대에게는 ‘지우개 커닝’이 있었다. 회사원 K씨의 경험.
“친구들이 도와 달라고 하면 거절하기가 어렵지요. 시험지를 받으면 일단 미리 약속한 시간 내에 다 풉니다. 그 다음 1번 문제부터 지우개로 답을 알려줘요. 책상을 사등분해서 맨 위에 지우개가 가면 1번, 맨 밑이면 4번이 답이 되는 것이지요”
커닝은 명백한 부정행위이다. 하지만 순진하고 어설퍼서 그 또한 학창시절의 추억이 되기도 했다.
이번 광주에서 발생한 사건은 그런 ‘고전적’ 수준이 아니다. 수천만원의 돈이 오가고 1백40여명이 가담해 사전에 연습까지 한 조직적 부정행위였다. 휴대 전화뿐 아니라 초소형 무전기, 카메라 폰 등이 이제는 커닝에 동원된다고 한다.
초첨단 기기로 훨훨 나는 아이들을 어떻게 올바로 가르칠지, 하이텍 시대의 또 다른 숙제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