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는 편지지에 약 600자에 달하는 협박편지를 기재해 원고에게 우송했다. 검찰은 기소장의 공소사실에 협박편지 전문을 기재했다. 이 경우 공소제기를 둘러싼 문제점에 대해 논하라.” 1998년 일본 사법시험 2차 형사소송법 문제의 골자다. 편지로 상대방을 협박하는 게 얼마나 중대한 사안인가를 보여준다.
“영국 로이스톤 시의 부시장 호킨스는 2만달러를 준비하지 않으면 시청을 폭파해 버리겠다는 협박 편지를 받고 불안에 떤다.” ‘시청으로 날아든 협박편지’로 번역된 주니어용 추리 도서의 한 부분이다. 기분 나쁜 협박편지지만 작가에게는 유용한 도구다.
시험문제나 책의 소재로 사용되는 협박편지가 현실로 나타나면 긴장과 공포가 엄습한다. “보신탕과 개고기에 독약을 넣겠다” “독극물 캡슐을 5마리의 개고기에 주입했다”는 편지가 한국 환경부 사무실에 도착했다.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보신탕 애호가들에겐 섬뜩한 일이다. 하지만 개를 사랑하고 보신탕을 입에 대지 않는 사람들은 미동도 안 할 일이다.
한국으로 향하는 여객기를 폭파시키겠다는 편지가 대한항공 방콕 지점에 배달돼 당국과 공항에 초비상이 걸렸었다. 태국의 반한 단체인 ‘아키아’ 명의로 된 편지에는 “요원 3명이 2004년 1월17일, 19일, 20일 오전 2시30분 방콕발 부산행 대한항공 KE8662편을 예약했으며 다른 2명은 19일과 20일 방콕발 인천행 싱가포르 항공을 예약했다”고 적혀 있었다. 구체적인 테러 협박에도 불구하고 이 항공기를 이용하지 않는다면 겁낼 일이 아니다.
협박편지의 표적이 된 당사자는 얼굴에 닭살이 돋고 밥을 먹어도 모래를 씹는 기분일 게다. “민족 반역자 황장엽은 각오하라. 역적을 황천길로 보낼 것이다” 한국에 망명한 전 북한 노동당 비서 황씨를 살해하겠다는 협박편지로 한동안 시끄러웠다. 그래도 당사자 외에는 심드렁할 따름이다.
그런데 협박의 대상에서 나 자신이 온전히 자유롭지 않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1978년부터 1995년까지 미국에서 18년 동안 16회의 우편물 폭탄으로 26명이 죽거나 다쳤다. 불특정 다수를 표적으로 했다. 1995년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에 자신의 선언문 ‘산업사회와 그 미래’를 실어주면 테러를 중단하겠다고 해, 수락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한 적이 있다. 결국 게재하기로 결정됐고 그 이후 테러는 그쳤으며 ‘유너바머’로 알려진 범인도 수년 뒤 체포했지만 장기간 미국인들을 불안하게 했다.
한인을 대상으로 한 협박편지로 타운이 어수선하다. 편지를 받았건 받지 않았건 테러 대상이 한인으로 돼 있어 우리 모두 잠재적 표적인 셈이다. 당국이 정신병자의 소행으로 보고 있지만 지난 8월 이후 수개월째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동요하지 말라”고 하지만 범인을 색출하기 전에는 한 구석이 찜찜할 수밖에 없다.
<박봉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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