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들은 유난히 술 마시기를 좋아한다. LA 한인타운만 해도 이제는 미 주류 사회가 인정하는 남가주의 유흥지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컬래터럴’, ‘이탤리언 잡’ 등 최근 영화에서 한인타운이 갱단들의 활동 무대로 소개됐으며 뉴욕타임스, LA타임스 등 주류 언론도 한인 사회의 환락상을 기사화 한 바 있다.
이처럼 술 문화가 널리 퍼지다 보니 음주 운전으로 잡히는 비율도 소수 민족 중 제일 높다. 술에 관한 한 한인들이 봉이라는 것은 미국 경찰 사이에도 잘 알려져 아예 술집 앞에 대기하고 있다가 차를 몰고 나가는 한인을 잡는 일이 관행화 되고 있다.
한번 잡히면 수천 달러가 날아가고 두 번, 세 번 계속되면 감옥에 가야하는데도 한인들의 음주벽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감옥보다 무서운 것은 강제 추방이다. 영주권자가 네 번째 음주 운전으로 걸리면 사고를 내지 않았더라도 감옥에 갔다 온 후 추방되는 게 관례였다. 이로 인해 수십 년 째 미국에 살다 어느 날 술을 먹고 운전한 죄로 한국으로 쫓겨나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 했던 한인이 하나 둘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낭보가 터졌다. 연방 대법원이 음주 운전은 인명을 살상하는 사고를 동반했다 하더라도 추방시킬 수 있는 죄가 아니라고 판결한 것이다. 갑상선 암으로 약물 치료를 받으면서 집에서 쓴 판결문에서 렌퀴스트 대법원장은 “음주 운전은 사람을 상하게 할 의도가 처음부터 있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이민자의 자동 추방을 규정한 ‘폭력 범죄’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로 인해 그동안 사고를 내지 않고도 거듭 음주 운전을 했다는 이유로 추방된 한인들에게도 구제의 길이 열렸다. 물론 자동으로 미국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고 법률 절차를 밟아야 하지만 추방의 부당함을 주장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음주 운전은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어리석은 행위지만 시민권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처벌한 후 추방까지 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비판은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외국으로 쫓아내 평생 미국 땅을 못 밟게 하는 것은 1~2년 감옥에 간 후 재활의 기회를 주는 것보다 훨씬 중한 벌이다.
부시 행정부는 9/11 이후 테러리스트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영장 없이 아랍계를 구금하고 변호사 접견권까지 주지 않는가 하면 툭하면 외국인을 추방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이로 인해 작년 한 해 동안 미국에서 7만9,000명의 외국인 추방 됐으며 이 중 8,000명이 영주권자였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부시 행정부의 정책에 일침을 놓았다는 점에서 주당뿐만 아니라 이민자 커뮤니티 모두가 환영해야 할 일이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키기 위해 어째서 행정부와 의회로부터 독립한 사법부가 필요한 가를 새삼 일깨워준 판결이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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