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여에 걸친 치열한 공방 속에 치러진 2004년 미국 대선은 결국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승리로 돌아갔다. 이번 선거처럼 공화 민주 양당 지지자들이 확연히 갈려 뜨겁게 자기 후보를 지지한 일은 미국 역사상 드물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로 인해 투표율이 수십년래 최고를 기록하는 등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지만 표 차가 근소할 경우 진 후보 쪽이 소송을 제기해 선거가 끝난 지 며칠이 지나도 승자가 가려지지 않는 사태가 발생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기도 했다. 선거 막판에 이르러 누가 이기느냐보다 신속하고 분명한 결과가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던 것도 2000년 플로리다의 악몽이 재현될 경우 미국 선거제도와 차기 대통령의 정통성이 손상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는 부시 대통령이 16년만에 처음 총 유효 표의 50%가 넘는 득표를 하고 오하이오 주에서도 뒤집을 수 없는 우위를 확립함으로써 기우로 그치고 말았다. 2000년 총 표수에서 승리하고도 선거인단 수에서 져 백악관을 내준 민주당의 숙원을 풀기 위해 나섰던 케리 후보는 20만표에 달하는 잠정투표가 개표되지 않은 상태임에도 승산이 없음이 확실해지자 부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승리를 축하하고 패배를 시인했다. 아무리 열렬한 캠페인을 펼쳤더라도 일단 승패가 정해지면 패자가 이를 인정하고 승자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것은 아름다운 미국의 전통이다. 이번에도 이 전통이 지켜짐으로써 미국은 그동안 둘로 갈라져 싸우며 난 상처를 치유하고 단합해 미국의 앞날을 설계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중도적 입장을 표방하며 아슬아슬하게 당선된 부시 대통령은 지난 4년간 보수 편향적인 정책을 펼쳐 민주당과 중도파들의 비판을 받아왔다. 백악관을 차지하는 것은 물론 연방 상·하원에서도 의석 수를 늘린 공화당으로서는 더욱 보수 일변도의 정책을 펴고 싶은 유혹을 받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미국의 분열을 더욱 깊게 하는 일이다. 미국 대통령은 공화당의 대통령이 아니라 모든 미국인의 대통령이다. 부시 대통령은 앞으로 4년간 승자의 아량을 베풀어 모든 미국인을 감싸 안는 정치를 하기 바란다.
이번 선거에서는 그간 정치에 무관심하던 한인들도 장시간 줄을 서가며 투표에 참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결과 교육환경이 좋아 한인들이 선호하는 어바인 시의원에 한인이 2명이나 나란히 당선되는 경사가 있었다. 정치 참여도를 높이면 한인 파워를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는 잠재력이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다.
한인들의 참여 열기가 높았던 이유 중의 하나는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가 한미 관계와 북 핵 문제 등 한반도 사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케리의 당선을 내심 바랬던 북한과 한국의 386세대들은 부시의 재선이 실망스러웠겠지만 북 핵이나 북한 인권 문제 해결에 있어 케리가 유화적일 것이라는 기대는 처음부터 희망사항에 가까웠다. 케리는 북 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선제 공격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고 북한 인권법은 연방 상·하원을 만장일치로 통과했을 정도로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이제 선거는 끝났지만 미국민들 앞에는 테러와의 전쟁, 이라크 사태 수습, 경기 활성화, 소셜 시큐리티와 메디케어 개혁 등 숱한 난제가 남아 있다. 일자리 상실과 이라크 혼란 등 악재를 극복하고 재신임을 얻는데 성공한 부시 대통령은 단합된 미국을 이끄는 지도력을 발휘하고 한인들도 미국의 밝은 미래를 개척하는 대열에 동참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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