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권(동부제일교회 목사)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흥부전’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내용이 퍽 재미있고 교육적이므로 어린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로는 안성맞춤이어서 많이 듣고 자랐기 때문이다.
문학적인 면에서도 우리나라 고전소설 중에는 인물(character) 묘사나 주제(theme)나, 구성(plot)이 아주 훌륭하여 우수한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근대 실학사상이 흥부와 놀부라는 인물들을 통하여 면면(綿綿)히 나타나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흥부는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그리고 놀부는 근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인물로 설정하고 있다.놀부는 퍽 생산적이면서도 심술이 목구멍까지 차 있는, 따라서 모든 것에 나 아니면 안된다는 유형의 인물이다.
놀부의 심술은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을 실감나게 한다. ‘못 먹는 밥에 재 퍼 넣기, 남의 밭 호박에 말뚝 박기, 엎어진 사람 꼭지 차기, 불난 집에 부채 부치기, 아기 밴 여자 배 차기, 똥 누는 놈 주저앉히기’ 이렇게 놀부 심술은 배배 꼬여있다.
동생 흥부가 굶어 죽는다해도 쌀 한 톨 가망이 없을 만큼 인색하지만 그가 부지런히 일해서 착실한 살림을 꾸려나가는 생산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는 살사구시(實事求是)의 근대 실학사상이 배어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방식의 사람은 나 아니면 안된다는 자기 과대평가로 남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고 모든 일에 자기 홀로 독주하려는 폐단을 노출시킬 수도 있다.
흥부는 무능하다 할 정도로 사람은 좋지만, 굶으면서도 노동을 천시하여 만사 놀고 먹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노동은 죽기보다 싫어하면서도 자식은 많이 낳아서 30여명이나 되었다. 자연 집은 찢어지게 가난할 수 밖에 없었다.
벽을 수숫대로 엮어 걸쳐놓았기 때문에 다리를 뻗으면 발이 수숫대 밖으로 나와 차고(着錮) 찬 사람 같았다고 했다. 입을 것이 없어 자식들을 한 방에 모아놓고 멍석에 구멍을 30개 만들어 덮어 씌웠는데 한 놈이 뒷간으로 가려면 뭇 놈이 따라가야 한다고 묘사했다.
이 집에 새앙쥐 한 마리가 들어와 쌀 한 톨을 구하러 밤낮 보름 동안을 다녀도 구하지 못하고 다리에 가래톳이 서서 앓는 소리에 동네사람들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래도 뒷짐 지고 양반 행세 하면서 제비가 물어다주는 박씨(lotto)로 일확천금을 꿈꾸는 것이었다.
대체로 한국사람들 중에는 놀부와 흥부의 유형이 많다. 한국 정치판에서나 사회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유형들이다. 교회 일을 죽도록 하고 헌금도 다른 사람들이 흉내내지 못할 만큼 하면서도 사사건건 자기 고집대로 하려 하고,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놀부형에 속한다 할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교회 일을 방관하면서 돌아앉아서는 불평을 일삼고, 수 틀리면 주저없이 교회를 떠나는데 ‘떠날 때는 말없이’가 아니라, ‘떠날 때는 깊은 상처를 남기고’ 떠나는 사람들은 흥부형에 속한다 할 것이다.
흥부전에서 보듯이 놀부형의 사람들과 흥부형의 사람들은 화목하며 화평을 이루기 어렵다. 그러므로 놀부형 사람들과 흥부형 사람들이 모였다 하면 싸움이요, 분열이 일어나게 된다.
규칙이 어떻고, 회칙이 어떻고, 심지어 사회법에 의해 만들어진 이사회 정관이 어떻다는 등, 의견이 분분하다. 더구나 자기의 뜻, 자기 생각을 관철하기 위해 핏대를 세우는 일도 없지 않다. 한창 싸울 때는 하나님을 교회 밖으로 모셔내고 하나님 없이 인간의 혈기만이 난무하는 현상을 신문지상을 통해 보기도 한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라 했고(엡2”14),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라 했다(엡 2:16). 주님께서 이루신 평화를 허무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화평을 이룬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은 자들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놀부형도 흥부형도 아닌 그리스도인들로 살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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