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를 처음 발명한 사람들은 BC 3500년경의 수메르 인들이다. 쐐기 모양으로 생긴 이들 문자는 빠른 속도로 중동 전역에 퍼져 나갔으며 얼마 후 이집트인들이 상형 문자를 만들어내는 촉매제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글자는 생겼지만 이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당시 지배 계급이 일반인이 글 읽는 것을 금해서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수많은 문자를 외우고 익히는 것이 보통 사람에게는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이다. 문자 해득이 보편화된 것은 알파벳이 등장하면서부터다. 글자 하나마다 뜻이 담긴 표의문자와는 달리 소리나는 대로 적는 표음문자인 알파벳은 대개 20~30개의 모음과 자음으로 구성돼 있으며 웬만한 사람은 하루면 배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알파벳은 시내 산의 광산에서 발견됐다. BC 1900년경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알파벳은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간소화해 셈족의 언어를 적은 것이다. 공교롭게 그 장소가 모세가 10계명을 전수 받았다는 곳이어서 알파벳의 발명자는 히브리인이라는 학설이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어쨌든 이 알파벳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장사를 하던 페니키아 인에 의해 널리 퍼져 그리스인을 비롯, 에트루스칸, 로마 등 근처 민족이 모두 자기 말을 적는 수단으로 자리를 잡게 됐다.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는 전혀 다른 언어지만 알파벳 문자는 그리스어의 경우 알파, 베타, 감마, 히브리어는 알레프, 벳, 김믈 등 비슷하다.
언어학자들은 현재 지구상에 퍼져 있는 모든 알파벳 가운데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시내 산에서 발견된 알파벳을 모체로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 하나의 예외가 한글이다. 15세기 중반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은 전 세계 모든 문자 중 가장 효과적으로 음을 표시하는 체계일 뿐 아니라 세계가 천지인 3지의 조화로 구성돼 있다는 높은 철학적 사상까지 담은 언어학적 금자탑이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문자 해득과 그에 따른 지식 독점을 권력 유지 수단으로 사용해 온 것이 집권자들의 행태였음을 비춰볼 때 말이 중국과 달라 뜻이 있어도 펴지 못하는 ‘어린 백성’을 위해 왕이 직접 나서 이런 찬란한 문화 유산을 남겼다는 것은 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경이스러울 뿐이다.
10월 9일 한글날을 맞아 LA 한인 사회에서도 한글 백일장 등 한글을 기리기 위한 각종 행사가 열린다. 이제 한글은 한국인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은 물론 일본, 중국, 베트남, 러시아 등 세계 각국인이 배우는 언어가 되어가고 있다. 2세들의 아이덴티티를 위해서나 장차 졸업 후 취업을 위해서나 한글을 배우게 해 손해가 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어렸을 때 한글 배우기를 등한시했다 대학에 들어간 후 “왜 내가 어렸을 때 한글을 가르쳐주지 않았느냐”고 따지는 2세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한글 가르치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결국은 부모의 의지에 달려 있다. 이번 한글날을 자녀 한글 교육의 결의를 다지는 날로 삼자.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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