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 밑에 지하실이 있군요”
몇 달 전 한국에서 바닥을 쳤다고 생각되던 주가가 더 떨어지자 한 주식 투자자의 입에서 나온 탄식이다.
세상에 절대적 바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진실은 주가뿐 아니라 사람들의 살아가는 형편에도 적용이 되겠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고 생각되는 바닥이 어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일상적 환경일 수도, 혹은 애써 올라가 도달한 환경일 수도 있다.
사회변혁, 혹은 사회복지란 곰팡이 피고 눅눅한 ‘지하실’에 평생 묻혀 사는 사람들을 최소한 ‘1층’으로 끌어올려 모두가 함께 햇볕 쬐며 살게 하려는 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정신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어서 사회는 발전을 한다. 며칠 전 그런 아름다운 이야기가 뉴욕타임스에 소개되었다.
뉴욕 할렘의 공립학교 유치원생 부모들은 지난 28일 모두 아폴로 극장에 모이라는 통지를 받았다. 교육과 관련한 중대한 발표가 있다는 전갈이었다.
방과후 프로그램이나 교과과정, 혹은 급식문제이거나 교내 안전문제에 대한 발표를 하려나 하며 할렘지역 5개 초등학교 유치원생 400명의 부모들은 극장으로 모여들었다.
그런데 그들, ‘지하실’ 주민들 앞에 ‘교육에 예스를’(Say Yes to Education)이라는 기구 대표 조지 와이스가 나와서 한 말은 상상을 초월하는 내용이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교육비를 모두 대겠다”는 약속이었다.
현재 5살인 이들 400명의 어린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앞으로 13년간 과외 지도, 여름방학 특별활동 등 교육에 필요한 모든 지원을 하고, 대학에 진학할 경우 학비 전액을 책임진다는 내용이다. 이에 필요한 예산은 5,000만달러. 2,000만달러는 와이스가 담당하고 나머지는 모금으로 충당할 계획이라고 했다.
와이스의 지원 대상은 해당 학생들만이 아니다. 가정의 분위기가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 부모의 연장교육, 형제들의 대학 진학까지도 같이 장려하며 도와준다. 학업에 대한 부모의 잣대가 높아야 자녀들의 잣대도 같이 높아진다는 인식이다.
이렇게 믿기 어려운 자선가가 있을 까 싶어 ‘예스’ 프로젝트를 알아보니 이 기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런 일을 하고 있었다. 투자금융 전문가로 성공한 와이스가 1987년 시작, 이미 필라델피아, 하트포드, 케임브리지 등 도심 빈곤지역 학생들 수백명이 혜택을 받고 있다. 처음 수혜 대상이 되었던 웨스트 필라델피아 지역 초등학교 5학년생 112명은 이제 성인이 되었다.
개천에서 용이 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용의 품종을 타고난 종자가 적은 이유도 있겠지만 개천이라는 환경에 익숙하다 보면 개천 너머를 꿈꾸는 일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친구들, 부모들, 이웃들 모두 미꾸라지로 개천의 진흙탕에서 편하게 사는 데 혼자 개천을 박차고 나가 용이 되기는 어려운 일이다.
와이스는 개천만 보고 자란 미꾸라지들에게 개천 너머의 세계를 보여주고 꿈을 기를 수 있도록 추진력을 보태주는 일을 하는 셈이다. 그 결과 학교나 책보다 갱과 마약이 가깝고, 그래서 10대 후반이면 감옥에 가있거나 총 맞아 죽는 것이 현실이던 그곳 청소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도 가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중년이 되면서 주변에 ‘지하실’에 갇힌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평균 수명은 길어졌는데 중년의 나이에 ‘이대로 살수도, 이대로 죽을 수도 없어’막막해 하는 사람들이다. 조기은퇴, 명퇴로 일을 잃은 사람들, 지금의 직장에서 미래가 안보여 고민하는 사람들 - 중년의 어느 지점에 가면 바닥인 줄 알았던 곳에서 더 떨어져 ‘지하실’시절을 맞는 시기가 있다.
‘개천’에 갇히는 것은 도심의 빈민층 아동들만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나이가 ‘개천’이 된다. 삶의 조건이라는 울타리를 뛰어넘는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는 비전에서 시작한다. 개천 너머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높이 보는 연습을 해야 하겠다. 눈 높이가 인생을 결정한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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