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남가주의 한 독자가 오피니언에 글을 보내왔다. 가든 그로브의 한 대형 한국 수퍼마켓에 갔다가 목격한 일을 두 가지 지적한 내용이었다.
첫째는 한인 수퍼마켓에도 이제는 타민족 고객이 많다는 사실이었다. “한국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한국 마켓에 온다는 사실이 뿌듯했다”고 그는 말했다.
두 번째 지적은 타인종 고객을 대하는 마켓 측의 불손한 태도였다. 시식 코너에서 직원이 맛보기 냉면을 나눠주고 있었는데, 타인종 손님이 가면 마치 구걸하는 사람 대하듯 반말로 함부로 하더라며 그는 불쾌해 했다.
그가 분개한 것은 언젠가 이삿짐을 나르던 히스패닉 청년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어서 더욱 그러했던 것 같다. 그 청년의 말이, 어쩌다 늦게 가면 사장이 “이 xx야, 왜 늦게 왔어”하며 호통을 친다는 것이었다.
60년대 말 이민법 개정으로 이민의 물꼬가 트인 후, 한인 이민사회의 지난 30여 년은 ‘주류사회 속으로’를 구호로 내건 중단 없는 전진이었다. 비즈니스도 ‘주류사회 속으로’, 자녀들도 ‘주류사회 속으로’, 그래서 마침내‘주류사회 속’에 코리안의 존재를 확실하게 뿌리 내리자며 우리는 밤낮으로 일했다.
그런데 그렇게 ‘주류사회’만 해바라기 하는 동안 우리 곁에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이웃이 형성되고 있었다. 한국말을 알아듣고, 한국말을 제법 잘 하며, 김치를 먹고, 설렁탕을 먹으며 불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 한인 소유의 공장이나 가게, 식당 등에 고용된 히스패닉 종업원들이다.
한인 상권이 커지면서 종업원 숫자가 많아지다 보니 남가주에서는 “안녕하세요?”하며 인사를 건네는 낯모르는 히스패닉을 심심찮게 만난다. 그들의 한국말 인사를 받는 기분은 솔직히 편치가 않다. 그들이 어떤 환경에서 한국말을 배웠을 지,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언어도 물처럼 낮은 데로 흐른다. 힘 가진 민족의 말을 힘없는 민족이 배운다. 그래서 약소민족인 우리의 말을 외국인이 배우는 경우는 드물었고, 한국말 잘하는 외국인의 존재는 우리에게 낯설었다.
우리 신문에 칼럼을 쓰는 크리스 포먼 박사가 30여년전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에 나갔을 때였다. 한국말을 배우려고 만화책을 즐겨 읽던 그가 한번은 재미있는 표현을 발견했다. “개소리 하지마”라는 말이었다.
그는 그 말을 꼭 써보고 싶었는데 어느날 버스 정류장에서 기회가 왔다. 여학생들이 털이 많은 그의 팔을 보며 “원숭이 같다”고 소근거리는 것이었다. 그는 이때다 싶어 “개소리 하지마”라고 했고, 여학생들은 기겁을 했다. 절대로 한국말을 모를 것으로 여겼던 백인의 입에서 한국말이 나왔으니 얼마나 놀랬을까.
최근에는 한국에도 한국말을 잘하는 외국인들이 많이 있지만, 모든 외국인이 한국말을 배우는 것은 아니다. 언어란 필요에 따라 배우는 법이어서 한국말을 배울 필요가 있는 외국인과 필요가 없는 외국인이 있다.
동남아에서 일자리를 찾아 온 유색인종은 기를 쓰고 한국말을 배우고, 미국인등 백인은 10년을 살아도 한국말을 배울 필요를 못 느낀다. 영어 한마디 연습하고 싶어 안달을 하는 한국인들이 너무 많아서 영어만 하며 사는 데 불편은커녕 오히려 대접을 받기 때문이다.
문제는 모처럼 외국인들에게 보급되는 한국말의 내용이다. 꿈을 가지고 한국에 왔던 동남아 사람들은 반말과 상소리만 잔뜩 익힌 후 한국에 대한 적개심을 안고 돌아간다고 한다. 한국의 좋은 벗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을 적으로 만드는 어리석음이다.
미주 한인사회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히스패닉 종업원들이 듣고 배우는 한국말이 너무 거칠어서 민망할 때가 많다. 한인 업주가 툭하면 종업원들을 ‘이 xx야’로 불러서 어느날 한인 손님이 찾아오자 히스패닉 종업원이 ‘이 xx야’라고 인사를 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한인사회가 주류사회만 바라볼 일이 아니다. 식구처럼 같이 살아온 히스패닉 커뮤니티를 감싸 안아야 하겠다. 그들이 배우는 한국말이 이제부터는 고운말이기를 바란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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