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큰 명절인 추석이 다음주로 다가왔다. 봄여름 한시도 쉬지 않고 땀과 정성으로 보살핀 농작물을 마침내 거둬들이고, 그 수확의 기쁨을 위로는 조상들과 옆으로는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농경문화권 최대의 축제이다. 21세기 미주에 사는 우리는 고국의 농경문화 축제와 지리적으로, 시대적으로 수억만리 떨어져 있다. 그래도 여름의 불볕 햇살이 차분하게 수그러드는 이즈음이면 드높은 고국의 가을 하늘, 그리고 알알이 여문 벼가 황금 물결을 이루는 고국의 들판이 가슴으로 느껴진다. 태어나면서부터 심신에 깊이 새겨진 전통의 숨결이다.
이민생활을 하면서 고국의 명절을 지키는 일은 쉽지 않다. 한민족 전통 명절이 미국에서 공휴일이 아닌데다, 대부분 이민 가정에서 부부가 맞벌이를 하며 빠듯하게 살다 보면 명절을 쇨만한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다. 올해만 해도 추석은 화요일인데 직장 가진 주부가 짬을 내서 손 많이 가는 전통음식을 장만하고, 온 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낸다는 것은 보통 정성을 요하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한 해, 두 해 명절을 그냥 넘기는 일들이 생기는데, 그러다 보면 우리 자녀들은 추석이라는 명절 이름도 모른 채 자라버릴 수가 있다.
이민사회는 후손을 이중 문화의 전통 속에서 키워야 한다는 점에서 고유 명절의 의미가 더욱 깊다. 설이나 추석 같은 고유명절은 뿌리교육을 위해 놓칠 수 없는 소중한 기회이다. 명절을 통해 자녀들은 전통을 배우고, 전통은 민족적 정체성의 뿌리가 된다. 유대인들이 수 천년 나라 없이도 유대인으로서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고집스럽도록 철저하게 지켜온 그들의 전통 덕분이다. 소년들의 13살 생일을 축하하는 성년식인 바 미즈바나 소녀들을 위한 같은 의식인 밧 미즈바는 이제 유대인 커뮤니티 밖에서도 다 아는 행사가 되었다. 그뿐이 아니다. 유대인의 설날인 지난 16일의 로시 하샤나, 그 10일 후의 욤 키퍼는 LA 통합 교육구의 공식 공휴일이다. 유대인 교사들이 고유 명절을 지키느라 모두 결근을 하는 일이 해마다 반복되자 교육구가 아예 이날을 공휴일로 정했다고 한다. 유대인들의 정치적 힘이 물론 압력으로 가세를 했을 것이다.
뿌리교육은 백문이 불여 일견이다. 우리 고유의 문화와 전통의 총체인 명절은 자녀들에게 민족적 정체성을 가장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심어주는 기회이다. 평일에 명절 쇠기가 여의치 않다면 추석을 주말에 앞당겨서 지내는 것도 괜찮겠다. 전통이 살아있는 민족은 맥이 끊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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