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제일 크다는 교보 문고에 가보면 과연 수많은 책들이 넓은 매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인터넷 강국답게 컴퓨터와 소프트웨어와 관한 책이 전체의 절반은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많은 책 중 지난 60여 년 간 한국에 대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미국에 관한 책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보기 힘들다. 작은 코너가 마련돼 있기는 하지만 미국을 심도 있게 다룬 책은 별로 없고 본바닥 미국에서는 기껏해야 변두리 취급을 받는 반미작가 책들이 몇 권 꽂혀 있을 뿐이다. 반미 친미를 떠나 한국인의 미국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지난 2일 친북 반미를 부르짖는 열린 우리당 소장 의원 27명이 “미국 하원을 통과한 북한인권법안이 한반도 평화 정착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내용의 서한을 미 의회 상원 외교위원장에게 전해 달라며 주한 미국 대사관에 전달한 적이 있다. 이 서한이 전달된 지 불과 1주일만에 연방 상원은 이 법안을 전격 상정했다. 의회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법안은 이 달 중 상원을 통과할 것이 유력시된다고 한다.
한국 국회의원들의 반발과 연방 상원의 행동은 우연의 일치로 볼 수만은 없다는 것이 워싱턴 관계자들 이야기다. 지난 13일 LA 유대인 관용 박물관에서 열린 북한 인권 세미나에 참석한 이 법안 발의자 샘 브라운백 연방 상원의원은 “주미 한국 대사관 직원이 직접 전화를 걸어 이 법안 상정을 막아줄 것을 부탁해왔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열린 우리당 의원들의 편지를 전달받은 리처드 루거 상원 외교 위원장 또한 북한 사람들의 인권 진작을 목표로 한 법안 반대에 한국 국회의원들이 앞장선 데 대해 충격과 분노를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방 의회 의원들은 지역구 주민의 이익과 견해를 대변하는 사람들이다. 법안 상정을 놓고 이들에게 외국 정치인이나 대사관이 직접 간접으로 압력을 가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결례다. 더구나 이를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역효과만 부른다. 프랑스의 시라크 대통령이 미국 의원들에게 공개장을 보내 “당장 이라크 철군 법안을 만들라”고 요구한다면 그 날로 정계 은퇴를 결심한 사람말고 이에 따를 의원은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친북 반미의 망상에 빠진 소수를 제외하고는 전 인류 보편의 가치인 인권 문제를 놓고 미국 정치인들에게 압력을 가해 이를 바꿔보려고 했다는 것 자체가 한국 국회의원들의 미국에 대한 무지가 얼마나 중증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북한 인권법’ 통과를 막아달라고 미 의회에 편지를 보낸 한국 국회의원들이 북한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있다. 워싱턴 국회 의사당 앞에서 삭발과 단식 투쟁을 하며 이 법안 통과를 규탄하는 일이다. 아마도 다음 날 연방 의회는 탈북자 지원금을 2배로 늘리고 모든 탈북자의 미국 내 정착을 보장하는 법안을 만들지 모른다. 그런 날이 하루 속히 오기 기대한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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