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랄만한 깜짝쇼
지난해 5월 미군 함상에서 열린 ‘이라크전 종전 선언식’에 조종사 복장을 한 사람이 전투기에서 내렸다. 역할은 전투기 부기장이었지만 신분은 미국 대통령인 부시였다. 또 11월 추수감사절에는 이라크 사태가 꼬이자 바그다드 주둔 미군부대를 전격 방문해 병사들과 칠면조 요리를 함께 했다. 정국 타개 및 사기 진작용 깜짝쇼였다. “잘한다”는 박수갈채와 함께 “쇼하고 있네” 하는 비아냥거림도 적지 않았다.
러시아 대통령 푸틴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러시아에 고분고분한 체첸공화국 대통령 카디로프 가 암살되면서 정정이 극도로 불안해졌는데도 수도 그로즈니를 방문했다. 기자들도 몸을 사리는 지역에 당당히 얼굴을 드러낸 푸틴은 체첸 지도부를 위로하고 카디로프 미망인을 포옹하며 “남편은 영웅”이라고 치켜세웠다. 반군의 기세를 꺾고 친러시아 정부를 다독였다. “대담하다”는 칭찬에 “정치적 제스처일 뿐”이라는 냉소도 많았다.
지난해 뉴욕의 한 호텔 로비에서 한 무리가 모여 소란을 피웠다. 심야에 단 15초 동안 박수를 치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세계 일부 대도시들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깜짝쇼다. 갑자기 몰린 군중이란 뜻의 ‘플래시 몹’(flashmob)으로 불리는 이 현상이다. 수십 명에서 수백 명까지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연락한 뒤 기괴한 이벤트를 만들어 짧은 시간 집행하는 것이다.
인터넷 혁명이 서로 모르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준다는 하워드 라인골드의 저서 ‘스마트 몹스’(Smart Mobs: The Next Revolution)가 불을 지폈다. 대단한 민폐를 끼친 것은 아니지만 자신들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공공장소에서 이상한 행동을 했으니 “정신나간 놈들”이란 반응이 나올 만했다.
관객들이 보는 앞에서 자유의 여신상을 사라지게 한 세계적 마술사 카퍼필드가 서울의 한 병원을 찾아갔다. 어린이 환자들 앞에서 자신의 검지와 중지에 고무밴드를 끼운 뒤 내보였다. 잠시 후 두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고무밴드가 약지와 새끼손가락으로 자리를 옮겼다. 모두 신묘한 마술에 환성을 터뜨렸다. 돈을 벌려는 것도, 이미 ‘하늘’에까지 닿은 지명도를 더 높이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아픈 어린이들에게 잠시나마 즐거움을 주기 위한 이벤트였다. 당시의 흥분이 오래 남는 깜짝쇼였다.
토크쇼 ‘오프라 윈프리쇼’가 19번째 시즌 첫 방송에서 방청객 276명 전원에게 대당 2만8,000달러인 폰티액 G6을 선사했다. 돈이 없어 차를 사지 못한 11명만 골라 폰티액사로부터 후원 받은 차를 선물하겠다고 해놓고 모두에게 열쇠를 주었다. 아쉬울 것 없는 ‘토크쇼의 여왕’의 깜짝쇼는 그녀의 기원대로 서민들의 작은 꿈을 실현시켰다. 다른 곳으로 마구 전염됐으면 하는, 진짜 놀랄만한 깜짝쇼다.
<박봉현 편집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