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러리가 엄수해야 할 철칙은 튀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고분고분 주어진 일에만 성심을 다해야 한다.
결혼식의 신랑들러리는 제아무리 멋진 총각이라도 신랑에게 결혼반지를 전달하는 데 만족해야 한다. 운집한 하객들 앞에서, 특히 미혼여성들 앞에서 혹 자신을 드러내려는 욕구가 꿈틀거려도 꾹 눌러야 한다. 신랑과 같은 차림이지만 신랑의 멋이 돋보이도록 옆에서 차분히 보좌하는 게 임무의 알파요 오메가이다.
신부들러리도 신부와 비슷한 차림을 한다. 이에 대해, 신부를 질투하는 악귀를 헷갈리게 하려는 의도라느니, 신부를 사모하는 남성이 신부를 식장에서 가로채 가는 불상사를 예방하려는 의도라느니 설도 다양하다. 그 연원이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니 들러리의 장구한 역사를 짐작할 수 있다.
세상에서 태어나 가장 아름다운 날로 기억하고 싶어하는 신랑, 신부에게 “신랑들러리 진짜 멋있더라, 신부들러리 정말 예쁘더라”는 말이 퍼지면 다음부터는 들러리하고 싶어도 제의가 뚝 끊길 것이다. 있는 듯 없는 듯 그저 주인공의 주가를 올려주는 게 들러리의 소임이다.
근대사회 들어 들러리의 전형이라면 역시 공산권에서의 공산당과 의회를 들 수 있다. 이들은 통치자의 결정에 100% 찬성으로 화답하는 게 예의이자, 단합의 과시라고 여겼다. 때에 따라 대외용 ‘어용 야당’을 두어 95% 찬성을 유도하긴 했지만 그게 그거였다.
1972년 11월24일 유신헌법으로 창설된 통일주체국민회의도 들러리의 족보에서 빠지면 섭섭할 것이다. 대통령을 뽑는 헌법기관인 통일주체국민회의가 박정희 장기집권 프로젝트의 믿음직한 들러리였음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다. 재계에서 최근 부각되고 있는 사외이사는 쟁쟁한 전문가들로 들어차 있지만 아쉽게도 재벌그룹 오너의 결정을 정당화하는 들러리 신세를 면치 못한다.
헌데 일각에서 “들러리는 싫다”며 박차고 일어섰다. 16대 총선에서 당선된 초선의원들이 당내의 ‘들러리 역사’를 바로 세우겠다며 ‘반란’을 주도했다. 할말은 하겠다는 것이다. 연예인 이효리가 세계적인 액션스타 성룡과 함께 찍을 홍콩영화의 출연계약에서, 성룡 주연영화에서 여배우가 늘 그랬듯이 양념에 불과하다면 관심 없다고 한 것도 들러리 문화에 대한 도전이다.
한인사회에서 한인회 이사회를 제쳐두고 들러리 얘기를 하면 재미가 반감한다. 과거 한인회 이사회는 대체로 회장단이 던져준 안건에 대해 거수기 역할을 했을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회장이 ‘자기 사람’을 심어놓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던 까닭이다.
신임 한인회 이사장이 이사회 거듭나기에 사력을 다할 심산이다. 이사회가 더 이상 회장단의 들러리가 아니라 타운 발전을 위한 건설적인 견제장치임을 보여주겠다는 각오이다. 한인회 신임 회장단과 신임 이사회의 전향적인 공생을 기대해 본다.
<박봉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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