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2일 실시되는 미국 선거에서 뉴저지주 팰리세이즈 팍의 시의원에 출마한 제이슨 김(Jason Kim·48세) 후보는 한인들의 정치력을 신장하기 위해 밑바닥부터 활동해 온 1.5세이다. 한인유권자협회를 조직하여 한인들의 정치력을 키우기 위한 운동을 했고 교육위원에 당선되어 선거직에 진출했다.
민주당의 아성인 팰리세이즈 팍에서 민주당 후보로 이번 시의원에 출마하여 당선이 유력시 되고 있다. 만약 그가 당선된다면 뉴욕과 뉴저지지역에서 최초의 한인 시의원이 되기 때문에 그 의미가 매우 크다.
김씨는 서울에서 고교를 졸업한 후 1975년 가족을 따라 미국에 이민, 뉴욕에 정착했다. 미국에 온 후 그는 브롱스에서 야채가게를 하던 아버지를 돕기 위해 일반 대학의 진학을 포기하고 브롱스 커뮤니티 칼리지를 다녔다.
이 학교에서 엔지니어링과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한 후 퀸즈칼리지에 진학했고 이어 컬럼비아대학의 교육대학 대학원 과정을 마쳤다. 그리고 1986년부터 브롱스 커뮤니티 칼리지에 수학과 컴퓨터 사이언스 강사로 출강하여 현재까지 거의 20년간 강의를 하고 있다.
한편 그는 1978년부터 10년간 플러싱에 있는 한인 YMCA에서 고등학생 지도교사로 활동했다. 그는 한국에서 고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꺼렸던 소심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흥사단에 가입하여 활동하면서부터 누구 앞에 나서도 얼굴이 붉어지지 않는 활달한 성격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한인 YMCA에서 고등학생들에게 미국에서 한인들이 뭉쳐야 한다는 생각을 열심히 심어 주었다고 한다.
김씨는 그 때 고등학생들에게 SAT 시험을 지도하는 진학학원을 시작했는데 진학 지도를 받는 학생들 중에 뉴저지 거주자들이 많았다. 그래서 학원을 뉴저지로 옮기기로 하여 1986년 팰리세이즈 팍으로 이사를 한 것이 이 곳과 정치적으로 인연을 맺게 된 계기였다.
한인 젊은이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김씨는 한인들의 정치력을 키우는데 젊은이들이 앞장서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미국에서 한인사회가 힘을 가지려면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힘을 길러야 하는데 이민 1세들의 노력으로 경제적 힘은 어느 정도 성장했으나 정치력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92년 그는 한인 유권자협회(KAVA)를 창립하는데 앞장서 초대 회장을 맡았다.
그는 이 단체를 통해 한인들의 시민권 취득과 투표 참가를 돕고 미국인들에게 한인들의 정치 참여 실태를 보여주고 1.5세와 2세 한인들의 정계 및 공직 진출을 돕기로 했다. 그리하여 뉴저지의 레코드지 등을 통해 한인사회를 미국에 소개하는데 힘썼고 선거 때 미국인 후보자들을 한인사회와 연결시키는데 주력해 왔다.
유권자협회 활동을 하면서 그가 느낀 점은 한인들을 정치에 참여시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만약 한인후보가 직접 출마한다면 한인들의 참여도가 높아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시도해 본 것이 스스로 교육위원에 출마하게 된 동기라고 한다.
1994년 김씨는 당시 한인유권자 50여명이 있던 팰리세이즈 팍에서 교육위원에 출마했는데 380표를 받아 낙선했다.이듬해인 1995년 그는 또 다시 교육위원에 도전했다.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지지를 호소했다.
그런데 첫번째 방문한 집에서는 문 조차 열어주지 않았다. 두번째 집을 찾아 문을 두드렸더니 주인이 문을 열면서 “너 때문에 여기를 떠야겠다”며 노골적인 인종적 거부감을 표시했다. 그는 기가 막혔으나 세번째 집을 찾았더니 마침 은퇴 교사였던 그 주민은 김씨를 방안에까지 맞아들여 다과를 대접하면서 “당신이 참 좋은 일을 한다. 열심히 해 보라”고 격려
해 주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용기 백배하여 선거운동을 했는데 또 680표 밖에 못 얻어 낙선하고 말았다.
그 후 그 해 가을 교육위원 한명이 결원되는 바람에 김씨는 카운티 수퍼 인텐던트의 지명으로 교육위원에 임명됐다. 그리고 다음해 선거에서 1년 임기의 교육위원에 당선됐고, 1997년 3년 임기, 2000년에 또 3년 임기, 2003년에 3번째 3년 임기의 교육위원에 내리 당선됐다.
현재 9년간 교육위원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는 지난해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교육위원장에 선출되었다.김씨는 교육위원을 하면서 지난 5년간 줄기차게 한인이 시의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팰리세이즈 팍의 브로드 애비뉴를 따라 200개 이상의 한인업소가 들어서고 한인 인구는 전체의 40%, 또 투표권을 가진 한인이 10% 가량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간 한인상가와 시당국간에 마찰이 생겼을 때도 한인들이 시정에 참여하는 길이 전혀 없었던 것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김씨의 이같은 주장은 결국 샌디 파버 시장을 움직여 김씨는 그의 지원을 받아 지난 6월 8일 민주당 예선에서 시의원 후보로 확정되었다.
팰리세이즈 팍은 뉴저지의 포트리, 레오니아, 리지필드로 둘러싸인 유권자 8.000명 정도의 작은 도시이다. 현직 시장인 샌디 파버를 비롯하여 시의원 6명이 모두 민주당인 민주당의 아성이므로 민주당 후보인 김씨의 당선 전망은 매우 밝은 편이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현직인 스페인계 의원을 밀어내고 김씨가 당의 공천을 받았기 때문에 스페인계 유권자들의 반감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또 그가 동양인이라는 점 때문에 백인들의 거부감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걱정도 대단하다. 그래서 그는 뉴욕·뉴저지 유권자센터, 뉴저지한인회, 한인후원회, 한인 선거대책위원회 등의 지원을 받아 1,000여표에
달하는 한인 표를 총동원하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한인 유권자들이 선거일에 시간이 없어서 투표장에 나올 수 없으면 미리 부재자 투표를 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 또 시의원 당선권이 2,000표 가량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타민족 후보와 연계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자기와 러닝메이트로 출마한 데이빗 로렌조 후보에게도 함께 투표해 주기를 당부한다.
시의원은 시의 예산을 세우고 법규를 제정하는 중요한 일을 한다. 김씨는 자신이 시의원에 당선되면 타운의 세금을 안정시키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있다. 또 한미간의 교량 역할을 하고 한인 1.5세와 2세의 공직 진출을 돕겠다고 한다. 그는 뉴저지 최대의 한인타운인 팰리세이즈 팍을 한인들은 이제부터 우리의 타운이라고 생각하고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한국의 한인타운이 아니라 미국의 한인타운으로 한국인에도 좋고 미국인에도 좋은 한인타운, 특히 우리 2세들이 살아가기 좋은 한인타운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바램이다.
그는 한인들이 미국사회에서 한층 더 높은 차원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1세들이 이룩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정치력을 신장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LA폭동 후 한인피해자들에 대한 복구사업이 지연되어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것도 한인들의 정치력 부족 때문이라고 본 그는 자신의 출마도 정치력 신장을 위한 시도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오는 11월 선거에서 조그만 도시인 팰리세이즈 팍의 시의원에 도전한 제임스 김의 당선 여부는 뉴욕·뉴저지지역 한인들의 정치 참여에 대한 시금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선거를 통해 한인후보가 타민족의 지지를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또 한인들이 얼마나 단합을 이룩할 수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에 그의 당선에 큰 기대를 걸어본다.
<이기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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