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합니다. 수강생이 3명밖에 안돼 강의를 할 수 없습니다. 학원 규정상 수강생이 최소 5명은 돼야 강의를 할 수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서울의 한 수학강사는 첫날 강의실에 온 학생 3명에게 정상적인 강의를 의한 조건을 설명했다. 강사의 인기가 없어서이기도 하겠지만 강의 내용이 일반적인 수준보다 한 단계 높은 것이어서 수강생의 발길이 모이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고교시절 여름방학 때 수강을 신청했던 한 한인은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강의를 듣지 못해 아쉬웠지만 강사가 정중히 사과했고 수강료도 그대로 돌려 받았다. 다른 학원을 다니면 됐기 때문에 폐강을 억울해 할 일은 아니었다.
한 자영업자는 미국에 온 뒤 얼마 안 돼 서울에 있던 자신의 중학교가 종적을 감추었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엔 놀랐었다. 3년 동안 친구들과 우정을 나눴던 학교가 문을 닫고 인근의 학교와 통합된 것이다. 이름도 없어졌다. 그러나 충격은 잠시였다. “개인적으로 앞으로 학력 시비가 붙을 가능성이 전혀 없고 동창과의 관계가 지금껏 이어지고 있으니 중학교가 없어진들 그리 서운해 할 게 뭐 있습니까.” 모교의 폐교에 덤덤한 반응이다.
한국에서는 인구가 서울과 수도권으로 몰리면서 지방의 학교들이 학생 부족으로 자연스럽게 문을 닫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 초등학교도 학생이 점점 줄어드는 바람에 없어졌습니다. 그래도 캠퍼스를 지역 도서관 등으로 선용하고 있어 다행입니다.” 한 직장인은 모교의 발전적 해체를 긍정 평가했다.
폐강, 폐교를 너그럽게만 대할 순 없다. 남가주의 한 사립대 이공계에서 박사논문을 쓰던 한 유학생은 예산문제로 자신이 소속했던 과가 다른 과에 흡수되면서 지도교수가 바뀌었다. 그래도 평소 실력을 인정받은 터라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헌데 전 지도교수와 달리 새 교수와는 도무지 ‘코드’가 맞지 않아 결국 학업을 중단했다. 폐과로 피해를 본 것이다.
UCLA에서 한국 전통의 명맥을 유지해 온 한국음악과가 폐과 위기에 몰렸다. “돈이 없어서”라는 게 학교측의 이유이다. 가야금, 대금, 해금 등 12개 과목을 개설해 학기마다 수강생도 평균 150명 정도를 확보했으니 학생이 없어 문을 닫아야 하는 것과는 사정이 퍽 다르다.
돈이 모자라 ‘학문적’인 분야에 치중할 수밖에 없고, 한국음악과는 이론을 가르치는 정교수 없이 실기로만 이뤄지기 때문에 ‘학문적’인 순도가 낮아 구조조정 대상이 됐다는 해명이다. 한국이라면 혹시 모를까, 입학 사정 시에도 성적 외에 다양한 분야에서의 활동을 중히 여기는 미국대학이 내린 결정이라 더욱 가혹하게 와 닿는다.
폐과를 막으려면 우선 9월말까지 2만달러를 마련해야만 한다. 한인사회가 나서야 한다. 한국문화를 알리는 일이니 한국 정부도 나 몰라라 해선 말이 안 된다. 한국을 배우려는 미국 학생들을 내치는 일만은 어떻게든 막아야 하지 않을까.
<박봉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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