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마야 서울가자’
정진영·이문식·이원종 삼각편대
미국 생활을 몇 년쯤 하고 돌아와서 본 2002년의 서울은 낯설음 그 자체였다.
사람들은 모두 줄로 매단 휴대폰 하나씩을 목에 걸고 있고 지하철에서는 이어폰을 끼고 전화통화를 하는 사람을 보면서 혼자 중얼거리는 것으로 착각해 실성한 게 아닌가 싶었다.
버스와 지하철은 모두 카드 판독기를 거쳐 통과하고 나면 TV화면으로 지루함을 달래주는 첨단 지하철을 만나게 된다.
미국 최대 도시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에서도 꿈도 못꿀, 몇 년 전이면 ‘미래의 가상도시’라면서 신문에서 소설을 써대던 그런 모습으로, 내가 몇 년 비운 사이 서울은 그렇게 변해 있었다.
북에서 내려온 간첩같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촌티를 내면서 몇 달을 보낸 후에야 내가 알고 있던 서울의 모습이 조금씩 보이면서 적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달마야 서울가자’의 스님들이 처음 서울에 와서 보여주는 그 어리숙한 모습에 나는 쉽게 동감할 수가 있었다.
마치 엉덩이에서 레이저 불빛이라도 나오는지 모두 한 번씩 들이밀면 ‘삑’ 소리를 내는 버스 카드 판독기, 빨강 파랑 네온 불빛에 둘러싸인 복도를 지나 콘돔 자판기를 거쳐 하트 모양의 침대와 사랑할 때 쓴다는 요상한 전동의자, 묘기대행진에나가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재빠르게 눌러대는 휴대폰 문자 메시지.
열명의 친구를 만나면 열명 모두 입에 올린던 ‘로또’…. 30년 넘게 도시 생활을 하던 나도 그 요지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는데 하물며 그 조용하던 산사에서 수행만 하던 스님들이야 오죽했겠는가.
어느날 아침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이 되버린 스님들은 자신들이 찾은 절이 깡패들의 손에 넘어간다는 낯선 상황과, 그런데 우연히 산 로또 복권이 300억원짜리에 당첨되는 또다른 낯선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처럼 한꺼번에 몰려든 ‘낯설음’이 수행하는 스님들의 욕망마저 ‘낯선 곳’으로 이끈다. 그 돈으로 절 빚도 갚고 싶고 , 그 돈으로 자신의 이름이 내걸린 절을 짓고 싶고, 추운 절에 따뜻한 보일러도 놓고 싶고….
이 정도야 그저 순박한 ‘소망’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깡패들이 그 로또를 찾는 데 자꾸 걸림돌이 되면서 스님들의 그 소망은 자꾸만 수행자들의 선을 넘는 ‘욕심으로 바뀌고 만다.
그래서 깡패들과 노래내기를 하고 술내기를 하고, 나중에는 훔치기까지…. 어, 스님들이 왜 이러시나 싶을 때쯤 영화는 마무리에서 정진영이 과감히 로또를 찢어버리고 , 다시 그걸 모든 사람들이 모아서 하나로 만들고, 그래서 영화 전반부에 던졌던 화두에 답하며 끝을 맺는다.
스님과 깡패의 대결이라는 전반적인 영화구도는 전편과 같지만 이 영화에선 전편에서와는 몰라보게 달라진 정진영 이문식 이원종의 스타파워가 있다.
그것은 각각 ‘영어를 섞은 모던한 법회 설법(정진영), 묵언수행 중 로또 당첨 사실을 알리기 위해 발버둥치는 바디 랭귀지(이문식), 잔뜩 술에 취해 “왜 주지는 너만 되냐”며 꼬부라진 혀로 하는 술주정(이원종) 장면 등에서 관객의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만든다. 무서워진 것이 없는 스님들. 혹시 다음엔 라스베이거스 같은 데라도 날라가는 건 아닐까?
/이윤정 편집위원 filmpoo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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