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주님의 뜻에 따라 사셨다. 만년의 삶은 사랑으로 더 빛이 나셨다. 구순 고령의 몸으로 병석의 어머니를 손수 돌보시던 아버님이셨다. 조금도 피로한 표정을 보이지 않으며 어머니를 돌보시던 아버지. 그 분의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복받쳐온다.
아버님 한필제옹은 1901년 6월29일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출생했다. 16살에 일본유학 길에 올라 송산고등학교를 거쳐 동경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해방 후 대한중석 초대 이사장, 신탁은행 (한일은행 전신) 은행장, 한국은행 감독원장 등을 역임하고 62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7년 전 94세로 타계한 부인 김명화 여사는 일본 동경여자미술학교를 졸업하고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한 서양화가였다.
한옹의 부친은 한석진목사로, 1891년 마펫 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은 한국 초대 목사 7명중 하나인 교계 선구자이시다. 평양신학교 1회 졸업생인 한 목사는 평양교회, 안동교회, 마산교회 등을 창립했고, 한국장로교총회 초대 총회장 및 N.C.C. 회장을 역임했다.
한 목사는 1894년 5월, 평양의 기독교 핍박사건 당시, 모진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다가 사형을 선고받고 형장으로 끌려가게 됐다. 마펫 등 여러 선교사들이 영국과 미국, 양국 공사에게 통고하였고 조선왕실과 교섭이 이루어져 고종황제가 칙명을 내림으로써 형리의 칼이 내리치려는 순간 형 집행이 중단돼 참수를 면하고 풀려나게 되었다. (채필근목사 저서, 한국기독교 개척자 한석진 목사와 그 시대에서 발췌.)
일찍이 모친을 잃은 한옹은 이러한 부친의 고통스러운 삶을 어린 시절부터 알게 되면서 부친에 대한 깊은 존경심과 효도심을 갖게 되었다고 동생인 한순제 권사(94세. 나성영락교회)는 회고한다. 부친을 끝까지 옆에 모시고 절대 복종하였고, 부친이 임종시 남긴 말씀- 사는 것도 주님의 뜻이요 죽는 것도 주님의 뜻이다- 대로 주님께 의지하며 일생을 지내셨다.
한옹이 한국신탁은행장으로 근무하던 때, 융자신청을 위해 은행장을 만날 때는 빈손으로 가라는 소문이 났었다. 가르침대로 평생 청렴한 삶을 사셨기 때문이다.
아버님의 가장 고귀한 미덕을 꼽는다면 무엇보다도 오랜 병환으로 거동을 못했던 부인에 대한 지극한 보살핌이다. 10여년간 매일 손수 식사를 만들어 수저로 떠 드리고, 목욕을 시켜드리고, 잠자리에 눕혀드리고, 또 빨래와 청소까지 구순의 몸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해내셨다.
허리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굵은 띠를 허리에 두르고 계시면서도 어머니를 자기만큼 잘 보살펴 줄 사람은 없다면서 자식들의 도움도 마다하셨다. 피로감이나 짜증을 한번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만족감에 차 있었다. 그 옛날 결혼식 때 부인에 대한 충성을 하나님께 맹세한 것을 지키고 있을 뿐이라는 말씀이셨다.
부인과의 사별 후, 한옹은 의사인 장녀 화심씨의 라호야 자택에서 그의 말없는 극진한 효심과 사위 김병목 박사(76. 의사. 전 샌디에고 한인회장)의 큰 도움으로 마지막 7년을 독서와 함께 지내셨다. 아마도 생애 가장 편안한 나날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주님의 부르심에 따라 103세 생일을 두 주 앞두고 지난 6월16일 밤9시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장례식은 본인의 희망대로 외부에 알리지 않고 아들 화열, 화석, 화림, 딸 화심과 화정, 그리고 사위 및 손주와 증손주, 또 동생 한순제 등 가족만 모여 간단하게 올렸고 유해는 글렌데일의 포리스트 론에 있는 어머니 묘 옆에 안치됐다.
한화석/LA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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