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학점은 에이스(Ace), 즉 넘버원 또는 최고를 뜻한다. ‘B’ 학점은 별다른 화끈한 의미 없이 보통실력으로 통한다. 그럭저럭 학업을 꾸려나갔다는 징표 정도이다.
‘C’ 학점은 조금 다르다. 학과를 간신히 통과한 것(Considered passed)으로 간주되지만 학업에 비상등이 켜졌음을 지칭한다. ‘D’ 학점은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다. ‘C’와 ‘D’를 받은 학생들이 나쁜 학점을 자신의 취미인 음악듣기에 견주어 “나는 CD를 좋아해”라며 슬쩍 넘어가려 해도 부모의 시퍼런 서슬을 피해가기는 어렵다.
‘F’ 학점은 공식적으로는 과락이고 자칫 집에서 청천벽력이 떨어질 위태위태한 국면이다. 권총 모양인 ‘F’를 2개 받으면 “쌍권총을 찼다”고 했다. ‘F’를 여러 개 받으면 아예 기관총 또는 무기고라 불렀다.
자녀의 학점에 무신경한 부모는 드물다. ‘A’ ‘B’가 많은 경우와 적은 경우 안색이 확 달라진다. 게다가 ‘B’는 고사하고 ‘C’와 ‘D’로 장식했다면 집안 분위기는 푹 가라앉는다. ‘F’라면 말할 것도 없다. 쌓였던 불만이 학점을 기폭제로 한꺼번에 폭발하기도 한다.
부모의 예민한 반응은 자녀들의 학점부담을 가중시킨다. 일부 학부모 사이에 자녀들의 학점 부담을 덜어주자는 조용한 움직임이 있다. 이들은 학점에 대한 기존의 평가를 완전히 뒤집었다. 이견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녀의 학점 스트레스를 덜어주기 위해서다.
자녀가 “A 받았어요” 하면 “아주 잘못했다(Absolutely bad)”라고 응수한다. 어차피 잘한 것은 다 아는 일이니 ‘A’ 받으려고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라는 뜻이다. “B 받았어요” 하면 “잘 못했네(Bad)” 라고 한다. 결코 잘못한 게 아니지만 B학점 따는 일도 쉽지 않으므로 학점 때문에 무리하지 말라는 것이다.
“성적표에 C가 있는데요” 하고 의기소침해 하면 “축하해(Congratulations)”라며 어깨를 두드려준다. “D가 하나 있어요” 하면 “너는 최고다(The bomb)”라고 치켜세운 뒤 멋진 레스토랑에 데려간다. 학생들 사이에 ‘대단한 친구’란 뜻으로 사용되는 ‘The bomb’의 첫 발음이 ‘D’ 발음과 같은 점을 활용한 표현이다. ‘F’를 받은 자녀가 무안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해 방문을 걸어 잠근 채 두문불출하면 “너는 팬태스틱하다(Fantastic)”고 극찬한 뒤 자녀가 평소 원하던 것을 선물로 사준다.
이와 같은 부모의 ‘역 발상’은 열심히 공부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아이에겐 위로가 되고, 잠재력은 있으나 게을러 성적이 형편없는 자녀에겐 가슴 깊이 반성할 기회를 줄 수 있다. 명문대에 들어간 한인 학생들이 학업 중압감을 못 이겨 비극적인 길로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중·고교 때부터 유달리 학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게 우리 자녀들이다. 사후 약방문이 되지 않도록 평소 ‘학점 거꾸로 보기’로 자녀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면 어떨까 한다.
<박봉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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