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기자
’비창’이라는 제목의 (클래식)음악에는 2곡이 있는데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6번과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8번을 말한다.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은 너무도 유명하여 새삼 언급이 필요 없을 정도이고 베토벤의 ‘비창’ 역시 유명한 소나타로 꼽히지만 차이코프스키의 ‘비창’만큼 대중적으로 알려진 곡은 아니다.
차이코프스키는 여러 측면에서 베토벤을 모델로 삼은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작곡가였다. 독신으로 살았다는 점, 교향곡(관현악곡)을 중심으로 작곡 활동을 펼쳤다는 점, 나폴레옹과의 전쟁음악 ‘웰링턴의 승리(베토벤)’, ‘1812년 서곡(차이코프스키)’등을 남겼다는 점등이다.
차이코프스키가 자신을 제 2의 베토벤으로 생각했는지는 알수 없지만 여러 측면에서 베토벤을 능가하는 작품을 쓸려고 애쓴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차이코프스키는 ‘비창’(교향곡)에 있어서도 탁월한 표현력, 풍부한 색채감, 멜랑콜릭한 선율 등으로 베토벤보다는 훨씬 음악적인 음악을 남겼다. 베토벤의 경우는 지나치게 내면적인 열정을 집약시키고 있어서인지 어딘가 투박하면서도 단순 음악이라고 불리우기에는 너무 정신적으로 흐른 편이 있었다.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이 전원적이고 현실의 슬픔, 석양의 아름다움을 그리고 있다면 베토벤의 ‘비창’은 인생의 엄숙함을 표현하고 있다고 할까,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이 한편의 위대한 그림이라면 베토벤의 작품은 詩에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베토벤이 그의 첫 히트 곡 비창 소나타(피아노)를 작곡한 때는 그의 나이 28세 때였다. 비록 초기에 속하는 작품이었으나 이 곡은 베토벤의 생애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열정적이면서도 초월적인 엄숙함을 담고 있다. 아직 귀가 먹기 이전의 작품이었지만 사상적 깊이는 후기의 어느 작품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베토벤은 음악가 중에서도 가장 시적인 비애가 넘치는 작품을 남긴 작곡가였는데, 그 첫 신호탄이 바로 ‘비창 소나타’였다.
대자연의 합창이라고나 할까 자연에 깃든 신의 영광이라고나 할까 베토벤의 ‘자연에 깃 든 신의 영광’등을 듣다보면 자연의 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다.
늘 자연 속에서 영감을 얻고 자연을 사랑했던 베토벤의 음악들은 분명하고 간결하다. 마치 바위처럼 웅대하면서도 폭포수처럼 장엄하게 영혼을 자연 속으로 이끌어간다.
사랑도 자연의 한 부분이었다면 베토벤도 사랑의 대가였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랑은 자연처럼 분명하지도 간결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복잡미묘한 사랑의 미로는 단순한 베토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게 했다.
사랑은 예지라기보다는 정열의 한 형태이다. 마음속에 불이 없으면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 사랑의 행위이다. 베토벤은 음악가로서는 불처럼 열정적으로 산 사람이었으나 현실 속에서의 사랑은 미완성으로 그치고 말았다. 음악의 순수성과 세속적인 열정과의 차이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여인의 순수한 사랑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보았던 베토벤이었지만 현실에서의 사랑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음악은 사랑의 미완성자들… 인간만이 소유한 사랑의 대용품, 그 초월이자 승화의 한 형태이다. 베토벤은 안타깝게도 자신의 열정을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문장가는 아니었다. 베토벤은 오히려 오선지에 악보를 옮기는 것에 글을 쓰는 것 보다 편했다고 한다. 베토벤은 비록 자신의 내면 속의 로맨티즘을 글로 옮길 수 없었으나, 월광, 비창, 열정 소나타등을 통하여 그의 로맨티즘을 음악적 시어로 옮겨 놓았다. ‘비창’ 역시 -음악이 글로 옮겨질 수 있다면 세계는 구원될 수 있을 것이다-믐 쇼펜하우워의 표현처럼 가장 아름다운 소나타에 속하는 작품이다.
1악장은 알레그로 몰로로 되어 있는데 1악장 보다는 2악장이 유명하다.(3악장은 론도) 사실 이 곡이 ‘비창’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2악장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베토벤의 ‘비창(2악장)’은 가장 널리 알려진 음악중의 하나이다. 아다지오 칸타빌레로 되어 있는데 위대한 시가 그렇듯 결코 어려운 부분은 하나도 없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초월적 로맨티즘은 그 이전의 어떤 곡에서도 엿볼 수 없었던 베토벤만의 천재가 드러나고 있다.
인류가 남긴 가장 아름다운 소나타… 베토벤의 8번 피아노 소나타에 ‘비창’이라는 제목이 붙은 것은 음악을 표현할 수 있는 다른 적당한 말이 없기 때문이었겠지만… 이 ‘비창’이야 말로 음악이 음악을 초월하여 하나의 언어가 되려는 몸부림… 그의 못 다한 사랑이 그려진 한 편의 절실한 인생 소나타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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