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나를 모르는 사람들 중에 간혹 애들이 몇이냐고 묻는 이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약간 주춤거리면서 아들 둘에 딸 셋이라고 대답한다. 내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상대방은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아니, 아이가 다섯이나 된다고요?” 하면서 기가 차다는 듯한 표정을 짓곤 한다. 마침 남편이 곁에 있을 때는 “우리를 보세요 아이 잘 만들게 생기지 않았나!”면서 너스레를 떤다.
고개를 갸우뚱하던 상대방은 우리 내외를 번갈아 쳐다보곤 수긍이 간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한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우리 부부는 서로 마주보며 배꼽을 쥔다.
며칠 전 어머니날이던 일요일, 한인타운 가까이 살고 있는 딸 세희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해마다 거르지 않고 챙겨주는 그녀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점심값도 내고 예쁜 선물까지 건네주었다.
너무 과용한 것 아니냐고 하자 “선물 드릴 때 사양말고 받으세요. 사양하면 자식들 마음이 헤이 해져서 어머님 몫 챙기지 못해요” 한다. 그녀의 마음 씀씀이가 너무나 고맙다.
우리의 만남은 그리 오래지 않은데 나는 마치 그녀를 내 복중에서 생산한 자식인양 착각을 하고, 그녀도 내 젖꼭지를 물고 자란 녀석 모양 스스럼없이 늘 내편이 되어준다. 다른 네 명의 자식들도 본인들의 여건에 따라 카드로, 전화로, 선물로 모두를 엄마의 존재를 고마워하고 사랑의 표현을 해오니 감사하고 눈물이 난다.
작년 가을 캐나다에 살고 있는 내가 낳은 딸 트리사가 나의 새 삶을 보러 왔다. 남편의 아이들과 함께 만나 인사를 나누고 저녁식사를 했다. 우리 모두 처음 만난 사람 같지 않게 화기애애한 대화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트리사가 “엄마, 이 집 분위기가 아저씨가 오히려 의붓아버지 같고 엄마는 이 집 아이들 친엄마 같아요” 해서 둘이 함께 폭소를 터뜨리던 기억이 난다.
평소에 친구를 만나면 이야기판을 혼자 도맡곤 하던 남편은 아이들 앞에서는 늘 조용한 편이고 나는 그 반대로 남편의 아이들을 만나면 수사스럽도록 떠드는 버릇이 있어 그렇게 보였나 보다. 남편의 아이들은 아빠가 혹시 내게 잘못하지나 않나 싶어 노심초사 염려하는 것도 퍽 고마운 일이다.
아이 하나 낳아서 잘 키우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해산의 수고 없이 덤으로 세명이나 공짜로 주어졌으니 나는 얼마나 축복 받은 사람인가! 거기에 알파와 플러스가 있으니 남편아이들과 나와의 비밀이지만 아빠를 이기는 전술까지 귀띔해 주기도 한다. 나는 이렇게 백만 대군을 얻었으니 기가 살아 펄펄할 수밖에 없다.
어디 그뿐인가 한국에서 수시로 전화로 문안해 오는 시누이 부대들도 장단맞춰 “오빠, 언니에게 잘해요. 술 조금 잡숫고요” 한다. 사면공격이 힘겨웠던지 어느 날 남편이 혼자 중얼거렸다. “허, 참 내 편은 하나도 없고 몽땅 당신 편이구먼, 내가 뭐 어때서 난리들이야? 나같이 착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들 그래. 당신 혹시 우리 식구들에게 뇌물 먹였어?” 하면서 불평 어린 소리를 낸다. 이때를 놓칠세라 나는 남편에게 여유 있게 한마디 던져주었다.
“그러니까 당신은 앞으로 딱 한 사람 내 치맛자락만 놓치지 말아요. 그 길만이 당신이 살아남는 길이라구요. 호호호… 하자” 어이구 왕년의 홍 아무개 다 죽었다. 죽었어 흐흐흑…
남편의 아이들과 오래 전 세상 떠난 자기 엄마 얘기도 스스럼 없이하고 엄마 없어 슬펐던 얘기들도 나눈다. 비록 지금은 내가 내 자식들에게 아침마다 메뉴를 바꾸어 만들어주던 런치박스를 그들에게 만들어줄 수 있는 시간은 지나 있지만 구멍난 울타리 한 구석을 메워 온전한 울타리를 만들어본다. 보상받지 못한 그들의 시간이 이 울타리 안에서 채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엄마의 역할을 다할 것이다.
앞으로도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내게 “자녀가 몇이세요?”라고 물어올 것이고 이제 나는 머뭇거림 없이 대답할 것이다. “아들 둘에 딸 셋이요.”
이학신
약 력
▲재미수필가협회 회원
▲순수문학 수필 당선
▲캐나다 뱅쿠버 문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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