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해오는 고사에 의하면 만두를 처음 만든 사람은 요리사가 아니었다. 3세기 초 중국 삼국시대 때 당대의 전략가였던 제갈공명이 만들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223년 유비가 사망한 후 제갈량은 유비의 아들 유선을 보좌하며 천하 평정의 기세를 몰아갔다. 그러나 각지에서 반란이 끊이지 않고 특히 남방의 소수민족들이 골칫거리였다. 공명이 일곱 번 잡았다가 일곱 번 풀어주었다는 고사로 유명한 맹획이 그 우두머리 중의 한명. 만두는 맹획 추격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공명이 남만의 군대를 추격하던 어느 날 강기슭에 도달했는데 바람이 심하고 물결이 거세어서 도저히 배를 띄울 수가 없었다. 그 지방 사람의 해석으로는 강에 사는 용왕이 노하신 것. 용왕의 노여움을 풀려면 사람의 머리 49개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고 했다.
어떻게 사람을 49명씩 제물로 바칠 수가 있는가 - 고민하던 공명이 꾀를 내었다. 양고기, 돼지 고기 등으로 속을 만들고 밀가루로 싸서 사람 머리모양을 만들어 제사를 지냈다. 그러자 강물은 거짓말처럼 잔잔해져서 제갈공명의 군대가 무사히 강을 건넜다는 고사이다.
그것이 만두의 유래라면 만두는 1800년의 역사를 가진 음식이다. 그 오랜 만두의 역사상 흔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만두소로 넣어서는 안될 음식이 만두에 들어가서 한국이 시끄럽다. 한국산 식품을 수입해 먹는 미주 한인들도 영 기분이 찜찜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눈으로 직접 본다면 아무도 먹지 않고 버릴 단무지 자투리와 썩은 무가 만두소로 둔갑해서 대형 식품업체가 제조한 만두와 호빵에 버젓이 들어가 있었다는 것이다. 영세업자가 잠깐 편법을 쓴 것이 아니라 거의 5년 동안 3,440 톤, 돈으로는 거의 23억원 어치의 ‘쓰레기 무’가 만두소로 쓰였다니 파장이 크지 않을 수가 없다.
만두소 제조업자들은 단무지 제조업체에서 버리는 자투리나 썩은 무를 공짜로 얻고, 단무지 제조업체는 연간 수백만원 대의 쓰레기 처리비용을 절약할 수 있어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공생의 관계였다고 한다.
‘쓰레기’처리를 대신한 만두소 작업이 위생적일 수는 없어서 대장균, 세균 범벅이었다고 하니 그런 만두를 먹고 배탈이 나지 않은 것만을 감사해야 할 판이다.
‘쓰레기 만두소’ 보도가 나간 후 LA 한인사회에서도 만두 기피 현상이 나타났다. 집에 있던 냉동만두를 모두 버리고, 앞으로 만두는 절대 먹지 않겠다는 사람, 미국에서 제조된 만두만 가려먹겠다는 사람, 집에서 직접 빚지 않는 한 안 먹겠다는 사람 등 냉동만두 소비는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겉은 번드르르 한데 속은 엉망인 것이 한국에서 한 두가지가 아니지만 이번에는 심했다. 언제나 믿고 사는 사회가 될까.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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