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규 김원일 권영민 정혜영
한국문단 귀한손님 4명도 참가
시인(김광규·한양대 교수)이 왔다. 소설가(김원일)도 왔다. 평론가(권영민·서울대 교수)도 오고 서구문학 전문가(정혜영·한양대 교수)도 왔다. 와서 베이지역 한인 문인들을 만났다. 만나 문학을 이야기하고 인생을 이야기했다.
저 키 저 무게를 감당하려면 뿌리는 대체 얼마나 깊이 박아둬야 할까 궁금해지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바다를 가리고 하늘을 가린 그곳(산타크루즈 인근 앱토스 몬티토얀 캠프)에서 정겹고 질펀한 문학잔치가 열렸다.
금요일(21일) 해거름에 시작된 샌프란시스코 한국문학인협회(회장 신예선) 주최 제7회 SF문학캠프는 서울서 온 귀한 손님 네명과 베이지역의 같은 핏줄 문인 오륙십명이 때로는 도란도란 때로는 왁자지껄 얘기꽃 웃음꽃을 피우는 가운데 일요일(23일) 느즈막까지 2박3일동안 이어졌다.
그 둘째날 오후.
상이란 상은 거의다 받아보고 시집만 해도 10권 가까운 시인의 소리가 갑자기 끊겼다. 시란 들리지 않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며 술술 이어지던 그의 강연이 스스로 던져놓은 물음(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에 채여 덜컹거렸다. 그리고는 좀 뜬금없고 뒤엉킨 말이 떠듬떠듬 따라붙었다.
…’누렁이’ 하고 부르면 그 많은 개 중에 누렁이만 꼬리치고 달려오듯이, 시를 쓴다는 것은 이러한 주술적인 힘을 가진 언어를 찾기 위한 노력 아닐까…그런데 그게…마치 불교에서 어떤 깨달음을 누구에게 가르치지 못하고…시도 아마…모법답안이 없습니다…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도 넉넉한 박수가 터졌다. 파고들수록 ‘모를 수밖에 없다는 걸 아는’ 청중이기에 그랬으리라. 수십년동안 오로지 글에 매달려온 신예선 회장도 지지난달 리노캠프 때 한줄이 막혀 여섯달 일곱달을 끙끙 앓고 미쳐버릴 것만 같은 때가 한두번이 아니라고 했다.
이어 나온 소설가는 아예 소설이 뭐다 어떻게 쓰는 것이다 입벙긋도 안했다. 자리를 잡자마자 SF한문협 정은숙 사무국장이 마이크를 앉은키 입높이에 맞춰주기도 전에 대뜸 이야기보따리를 풀어헤쳤다. 살아온 이야기, 아니 살아남은 이야기였다. 그것은 곧 소설이기도 했다.
일찍이 빨간 물이 들어 집은 돌보지 않으면서 세상을 구하겠다고 들쑤시고 다니다 전쟁통에 북으로 넘어간 남로당 간부 아버지, 그런 남편이 미워서인지 걸핏하면 발가벗긴 아들(김원일)을 싸리로 사정없이 후려패는 어머니, 신문팔이, 야간학교, 움쩍만 하면 ‘기관원’의 감시, 움쩍도 안하면 ‘운동권’의 조롱….
…제 이름만 해도 글(그렇)습니다. 동네에 한학에 밝은 분이 계셨는데, 하도 울(우리) 집안이 깨지고 그르(러)니까, 제가 태어났을 때 마 집안을 하나로 잘 묶이(어)라 그런 뜻으로 ‘원일(源一)’이라고…소년시절 그른(런) 경험과 기억이 이후 문학에 다 배어있고…
역시 큰 박수가 쏟아졌다. 돈 벌기도 벅찬 세상에 돈과 시간을 축내가며 마련된 문학캠프는 이렇게 뭘 가르치고 배우는 뻣뻣한 시간이 아니라 삶의 고백을 통해 문학을 살찌우고 문학을 통해 삶을 기름지게 하는 공간이었다.
이야기에 지치면 노래를 부르고 노래하다 지치면 또 이야기를 계속하고, SF한문협 회원들이 준비한 연극(흥부놀부전)을 보며 배꼽을 잡기도 하고. 낮밤을 잊은 문학잔치에 술병은 쉴새없이 비워지고 덩달아 재떨이도 재를 담아둬야 하는 ‘본분’을 망각한 채 재를 비우는 데 더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렇게 비워진 것보다 훨씬 많은 무엇이 채워진 잔치였다.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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