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대통령 집권 이후 요즘처럼 악재가 연일 터진 적은 없다. 부시 행정부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좌우할 이라크 사태가 게릴라 준동과 인권 유린으로 삐걱거리고 있는 데다 차기 이라크 정부 수반으로 점찍어 놓고 미국이 돈까지 대주던 찰라비 이라크 국민의회 의장이 이란 스파이 노릇을 한 혐의까지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라크 사태 악화와 함께 부시의 지지도도 연일 추락, 집권 후 사상 최저치를 달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역대 대선을 보면 지금 시점에서 40%대의 지지도밖에 얻지 못한 대통령은 대체로 재선에 실패했다며 빠른 시일 내 이를 뒤집지 못할 경우 부시가 다시 백악관을 차지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최근 각종 여론 조사를 보면 전체 유효 표는 물론 올 대선을 좌우할 16개 ‘격전주’(battleground state) 중 12개 주에서 케리는 부시에 앞서 가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부시에게는 희망은 없는가. 그렇지는 않다. 랠프 네이더라는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번 대선 때도 네이더는 플로리다에서 고어 표를 깎아 먹음으로써 부시 당선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번만은 제발 출마를 참아 달라”는 주위의 만류를 물리치고 다시 출사표를 던진 네이더는 5% 정도의 고정표를 갖고 있다. 특히 올해는 이라크가 죽을 쑤면서 7%까지 그에 대한 지지도가 올라가고 있다.
그에 대한 지지가 높아지는 것은 민주당으로서는 반가운 일이 아니다. 그에게 가는 표의 대부분은 그가 출마하지 않았을 경우 민주당에 쏠릴 표이기 때문이다. 케리와 부시 두 사람 대결에서는 케리가 유리한 것으로 나타나다가도 네이더 변수를 집어넣으면 박빙의 접전으로 변한다. 일례로 지난 번 대선을 결정지은 플로리다의 경우 지금은 부시 46%, 케리 45%, 네이더 3%지만 네이더가 빠질 경우 케리가 우세한 것으로 조사됐다.
케리가 최근 네이더를 만나 그를 추켜세우며 달랜 것도 그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표를 뺏기지 않으려는 작전의 일환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호소에도 불구, 네이더가 캠페인을 중단하거나 민주당과 전략적 제휴를 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네이더는 ‘확신범’이다.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별 차가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지난번도 그랬고 이번도 “개인의 아집과 욕심 때문에 부시에게 승리를 안겨줄 수 있느냐” “돈키호테 같은 행동으로 소비자 운동가로 평생 이룩한 업적을 헛되이 하지 말라” 등등 숱한 비난과 경고를 아랑곳하지 않고 대선 출마를 강행했다. 그는 지난 번 대선에서 두 당은 “돈을 보고 무릎을 꿇는 속도가 다를 뿐”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라크 사태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부시 진영으로서는 네이더가 선전해 접전 지역에서 케리 표를 빼앗아 주는 것보다 반가운 일은 없다. 과연 이번에도 네이더가 민주당의 훼방꾼 역할을 해낼 지 궁금하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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