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의 한 병원에서는 환자들에게 김치를 한 병씩 준다. 파는 게 아니라 거저 주는 것이고 마개로 잘 밀봉돼 있어 대기실에 냄새가 진동하지는 않지만 고춧가루에 범벅이 된 시뻘건 김치가 버젓이 오고 간다. 환자 가운데 한인이 거의 100%를 차지하는 이 병원은 손님, 특히 노인들을 유치하기 위해 기발한 마케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메디칼 노인환자들이 ‘봉’으로 여겨지는 풍토에서 나온 기가 막히는 아이디어다.
김치를 공짜로 받은 노인들은 직접 먹기도 하지만 이를 아들과 딸에게 주기도 한다. 직장에 다니느라 김치를 만들어 먹기엔 짬이 나지 않고 마켓에서 사먹자니 다소 비싸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자녀들에겐 그야말로 ‘굴러온 김치’다. 김치는 노인들을 한 명이라도 더 자기 병원으로 오게 하는 미끼다.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작은 선물을 주는 것 자체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한 때 일부 한의원들이 할아버지 할머니 손님에게 꿀을 선물로 준 적이 있었지만 이는 그래도 애교로 봐줄 만했다. 하지만 김치 선물은 노인 환자들을 끌어오고 다른 병원에 빼앗기지 않기 위한 ‘서바이벌게임’의 극단적인 모습이란 느낌에서 ‘쉰 맛’을 풍긴다.
어떤 병원에선 택시운전사와 합의해 노인 환자를 데려오게 한다. 택시운전사는 노인에게 10달러씩 현찰로 ‘사례금’을 준다고 한다. 병원 측에서 택시운전사에게 집어 줄 ‘활동비’는 이보다 더 두둑할 게 자명하다. 과거 카지노 측이 택시운전사에게 손님 1명에 3달러씩 준다는 조건으로 공조체제를 구축한 적이 있었지만 유흥업소이니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들 일은 아니다.
치즈, 떡, 국수 등 병원 측이 내놓는 선물도 다양하다. 한 할머니는 “얼마 전 한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았더니 담요, 돗자리를 내주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들 물품은 김치 이전 세대다. 시각으로나 후각으로 부담이 가는 김치가 선물로 등장한 것은 일종의 ‘특단의 조치’라는 후문이다.
돌아가는 분위기가 이러하니 아무 것도 주지 않는 ‘짠돌이’ 병원은 노인들에겐 세상물정 모르는 야박한 곳으로 분류된다. 입 소문이 퍼지면 왕따가 되지 말란 보장도 없다. 실제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선물을 주지 않는 병원보다 선물 주는 병원을 좋아한다”는 병원 측 주장이 터무니없는 얘기만도 아니다.
메디칼을 둘러싸고 이처럼 묘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형성돼 있다. 치료보다 선물에 볼일이 있어 오는 일부 노인들 때문에 정작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들이 뒤로 밀리기도 한다. 노인들도 정작 치료가 급할 때 불편을 겪을 수 있다.
“한인사회의 이미지를 깎아 내릴 뿐 아니라 메디칼 프로그램을 지켜주는 납세자들에 대한 기만행위”라는 볼멘소리도 흘려 듣기엔 빈도가 잦다. 일부 병원과 노인들을 연결하는 왜곡된 ‘메디칼 고리’를 끊어버릴 때가 된 듯하다.
<박봉현 편집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